[농민 주일 특집] 생명농업 이어 가는 농민의 하루

(가톨릭신문)

7월 19일은 제31회 농민 주일이다. 교회는 농민 주일을 맞아 농촌의 어려움에 공감하고, 생명을 일구는 농업과 농민의 가치를 되새긴다. 오늘날 농촌은 기후위기로 농사 시기와 수확량을 예측하기 어려워진 데다 고령화와 생산비 상승, 일손 부족까지 겹쳐 어느 때보다 힘겨운 상황에 놓여 있다. 그럼에도 농민들은 생명의 땅을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으로 묵묵히 논과 밭을 일군다. 의정부교구 가톨릭농민회 대광분회 회원 최성순(로사) 씨가 운영하는 경기도 연천 안뜨레농장을 찾아, 기후위기 시대 생명농업을 이어 가는 농민의 하루를 함께했다.

기후위기가 바꾼 농촌

“10년 전도 아니야. 고작 2~3년 전부터 자외선이 너무 강해졌어요. 햇볕이 뜨거운 정도가 아니라 따가워요. 피부가 익는다니까요.”

39년째 안뜨레농장을 운영하는 최성순 씨는 최근 몇 년 사이 햇볕이 확연히 달라졌다고 말했다. 그의 하루는 새벽 5시에 시작된다. 정오가 되기 전까지 밭일을 하고 한낮의 열기를 피해 쉬었다가, 오후 4시쯤 다시 밭으로 나간다. 해가 가장 높은 시간에는 비닐하우스에 들어갈 엄두조차 내기 어렵다.

“새벽에도 체감온도가 25도를 훌쩍 넘는 것 같아요. 열대야가 이어지면 밤새 달궈진 열기가 아침까지 그대로 남아 있어요.”

기후변화는 농민의 노동시간과 방식까지 바꾸고 있다. 새벽과 늦은 오후로 일을 나눠도 더위를 피할 수 있는 시간은 갈수록 줄어든다. 이 같은 체감은 한 농민의 경험에 그치지 않는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2024년 농업·농촌 국민의식 조사」에서 농민들은 농업 경영을 위협하는 가장 큰 요인으로 ‘기후변화에 따른 기상이변과 재배 여건 변화’를 꼽았다. 

달라진 기후는 작물의 생육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다. 씨를 뿌리고 수확하는 시기를 예측하기 어려워졌고, 작물이 품종 고유의 크기와 모양대로 자라지 않는 일도 잦아졌다. 올해 안뜨레농장의 미니 단호박은 일반 단호박만큼 커졌다. 어른 주먹 정도여야 할 열매가 아이 얼굴만 한 크기로 자란 것이다.

최 씨는 “예전에는 봄에 심은 단호박을 가을까지 일정하게 수확했지만 이제는 언제까지 열릴지 가늠하기 어렵다”며 “올해는 미니 단호박 크기도 유난히 크고 열린 양도 지난해보다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작물이 크고 많이 열린다고 무조건 좋은 건 아니다. 농산물은 품종에 맞는 크기와 모양을 갖춰야 상품성이 높다. 기후가 바뀌며 오랜 농사 경험으로도 수확량과 품질을 예측하기 어려워진 셈이다.

그래도 생명농업을 이어가는 이유

최 씨는 약 3000평의 밭에서 미니 단호박과 감자, 고추, 오이, 가지, 양배추, 상추, 무 등 20여 종의 채소를 기른다. 10년 전 가톨릭농민회 활동을 시작하면서 농약을 사용하던 기존 농법에서 무농약 농사로 전환했다.

주력 작물은 미니 단호박이지만 판로에 맞춰 여러 작물을 함께 재배한다. 수확한 농산물은 인근 하나로마트 로컬푸드 매장과 계약 업체, 교구 우리농촌살리기운동본부 생활공동체 나눔터, 직거래 장터인 명동보름장 등을 통해 소비자에게 전달된다.

농장 창고에는 갓 수확한 감자가 가득 널려 있었다. 농민 주일을 맞아 7월 19일 서울 명동에서 열리는 명동보름장에 내놓을 농산물이었다.

무농약 농사는 일반 농법보다 훨씬 많은 노동을 요구한다. 제초제를 쓰지 않으니 밭의 풀을 일일이 뽑아야 하고, 해충도 사람의 손으로 잡아야 한다. 덥고 습해질수록 풀과 벌레는 더 빠르게 번진다.

무농약 농사를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도 여러 번 있었다. 하지만 가톨릭농민회 회원으로서 생명농업을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이 그를 다시 밭으로 이끌었다.

“예전 농법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왜 없었겠어요. 그래도 무농약·친환경 농업을 하는 사람이 있어야 이를 원하는 소비자들에게 공급할 수 있잖아요. 그런 사명감으로 이어 가고 있어요.”

심각한 기후위기 직격탄 맞은 농촌…잇따른 기상이변에 농사 여건 악화

39년째 농장 운영하는 최성순 씨…수확량·품질 예측 힘든 상황에도

무농약·친환경 농업 사명감 지켜…“생명농업 우리 농산물 선택해 주길”

빈자리 채우는 이주노동자

농촌 고령화도 농민들이 마주한 또 다른 어려움이다. 농장이 자리한 지역의 농민 대부분은 70~80대다. 올해 63세인 최 씨는 마을에서 ‘젊은 농부’다.

때문에 외국인 계절근로자(E-8)는 부족한 일손을 보조하는 수준을 넘어 농사를 지속하기 위한 필수 인력이 됐다. 이들은 파종기·수확기 등 단기간 집중적으로 일손이 필요한 농·어업 분야 인력난 해소를 위해 입국한 노동자들이다.

최 씨도 3년 전부터 농번기마다 계절근로자를 직접 고용한다. 특히 무농약 농사를 지으려면 풀을 뽑고 벌레를 잡는 데 더 많은 사람의 손이 필요하다. 농장에서는 베트남에서 온 양 씨와 코아 씨, 고용허가제 비전문취업(E-9)으로 입국한 네팔 출신 라즈 씨가 함께 일하고 있다.

올해 처음 한국에 온 양 씨에게도 고온다습한 여름은 버겁다. 그는 뜨거운 햇볕 아래에서 이른바 ‘선풍기 조끼’를 입고 밭일을 이어 갔다.

농촌과 생명농업, 농민 홀로 지킬 수는 없다

여러 어려움 속에서도 최 씨가 농사를 지으며 지키는 기준은 분명하다. “내가 먹을 수 없는 것은 팔지 말자.”

최 씨는 “예쁘고 깨끗한 농산물을 팔기 위해 수확 한 달 전까지 농약을 뿌리는 일은 농민 스스로 경계해야 한다”며 “내가 먹지 못할 것을 소비자에게 팔아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소비자의 선택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몸에 걸치는 옷에 쓰는 비용을 조금 줄이더라도, 몸속으로 들어가는 먹거리만큼은 친환경 농산물과 질 좋은 우리 농산물을 선택해 달라는 것이다.

의정부교구 우리농촌살리기운동본부 본부장 박인수(요셉) 신부는 “도시 소비자들이 농가를 찾아 일손을 돕고 농민들의 어려움을 들으며 함께 식사하고 교류하는 자리에서 농민들은 큰 힘과 위로를 얻는다”고 말했다. 

이어 “교회가 농민들을 기억하고 ‘우리가 함께하고 있다’는 마음을 표현해 주기를 바란다”며 “매일 마주하는 한 끼의 밥상이 농민들의 땀과 생명의 땅에서 왔다는 사실을 생각한다면, 기후위기의 심각성과 농업의 소중함도 자연스럽게 깨닫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변경미 기자 bgm@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