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에서 대구로, 김종강 대주교의 삶과 신앙

(가톨릭평화신문)


[앵커] 대구대교구 부교구장에 임명된 김종강 대주교는 청주교구장 착좌 4년 만에 대구로 자리를 옮기게 됐습니다.

새로운 순명의 길 앞에 선 김종강 대주교의 삶과 신앙을 돌아봤습니다.

맹현균 기자입니다. 

[기자] 김종강 대주교는 1965년 충북 청주시 청원구 오창읍 가곡리에서 태어났습니다.

김 대주교는 증조부 때부터 가톨릭 신앙을 지켜온 구교우 집안에서 자랐습니다.

'늘 주님을 사랑하고, 사람들을 사랑하라'는 말을 새기며 성장했습니다.

<김종강 대주교 / 대구대교구 부교구장> 
"주님을 사랑하고 사람들을 사랑하라고 그것이 우리 집안의 가훈이라고 늘 말씀하셨고 가족끼리 매일 저녁기도, 묵주기도 하면서 그렇게 자랐던 것 같습니다."

김 대주교는 1996년 대구가톨릭대를 졸업했고 같은해 사제품을 받았습니다.

수품성구는 '사랑이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였습니다.

김 대주교는 청주교구 서운동·흥덕본당 보좌, 학산본당 주임을 지냈습니다. 

로마에서 유학할 때 교회사를 공부했고, 교황청립 성 바오로 국제선교신학원 부원장을 맡기도 했습니다.

귀국 후에는 청소년사목국장, 대전가톨릭대학교 교수를 역임했습니다.

김 대주교는 못하는 운동이 없었고, 연주와 노래에도 능했습니다. 

친화력도 뛰어나 동료 사제들, 평신도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았습니다.


이러한 김 대주교의 면모는 청주교구장 재임 기간에 고스란히 나타납니다.

사랑을 강조하며 신앙 선조의 삶을 기억하고 실천했고, 미래세대와 함께하는 젊은 교회를 그렸습니다.

2023년은 신앙 선조들의 삶에서 배우는 교구공동체를 만들고자 했습니다.

2024년과 2025년에는 최양업 신부의 삶을 본받고 신앙 선조들의 열정과 선교 정신, 사랑을 실천하자고 교구민들에게 요청했습니다.

올해는 희망과 미래세대를 언급하며 희망으로 살아가는 젊은 교구 공동체를 구상했고 2027 서울 세계청년대회 준비에도 진심이었습니다.

사실 김 대주교는 신학생 시절 대구에서 공부한 경험을 제외하면 대구와 깊은 인연은 없습니다.

<김종강 대주교 / 대구대교구 부교구장>
"제가 대구로 올 거라는 상상도 안 했지만 대구는 제가 아는 지인도 없고 집안도 없고 정말로 낯선 곳이었어요."

다만 신학생 시절 함께 성소의 길을 걸어가는 동기, 선·후배들과 추억은 여전히 생생합니다.

자신을 대구로 보낸 하느님의 뜻을 모르겠다는 겸손한 목자는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교회가 다양해지고, 더 넓어지는 데 기여할 수 있다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김종강 대주교 / 대구대교구 부교구장>
"교회가 더 다양해지고 넓어지는 데 기여할 수 있다면 그것도 저에게 주어지는 과제라고 생각하고 직무라고 생각합니다."

다재다능하고 사랑이 많은 김 대주교의 사목 여정은 대구에서 계속됩니다.

CPBC 맹현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