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토마스 아퀴나스에게 행복의 길을 묻다] 인간 행복을 보장하는 정당한 법의 기초: 자연법

(가톨릭신문)

지난 회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성 토마스 아퀴나스는 법이 인간이 지닌 이성적 본성을 실현하고 공동체 안에서 번영을 이룰 수 있도록 보호하는 울타리 역할을 수행한다고 보았다.


그렇지만 그는 결코 소크라테스의 말로 오해되어 널리 퍼져나갔던 ‘악법도 법이다’라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악법이란 “법이 아니라 법의 타락”(I-II,95,2)이나 “폭력”(96,4)이라고 주장했다?. 만일 어떤 법이 공동선을 지향하지 않고 특정 집단의 이익이나 권력자의 욕망을 위해 작동한다면, 그것은 법의 본성을 잃은 것이다. 이런 경우 법치주의의 위기를 넘어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심각한 위협이 된다. 그래서 법의 정당성은 형식이나 절차만으로 결정되지 않고, 그 내용이 정의와 선에 부합하는지에 의해 판단되어야 한다.


실제로 역사적으로 많은 규칙이 법의 형식을 갖추고 있었지만 인간의 존엄성을 파괴하는 경우들도 있었다. 인종차별을 제도화한 법, 특정 종교나 민족 집단의 권리를 박탈한 법, 정치적 반대자를 침묵시키기 위해 제정된 긴급조치 등은 모두 외형상 법일 수 있다. 그러나 토마스의 기준으로 보면, 그것들은 공동선을 지향하는 이성의 질서가 아니라 권력의 왜곡된 의지를 제도화한 것에 가깝다. 나치 독일의 인종차별법이나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 법제는 이런 점을 보여 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특히 현대 사회가 직면한 실증주의의 위기 속에서, 도덕적 기초가 결여된 법은 인간의 양심을 따르기는 커녕 사회적 혼란만을 야기할 뿐이다. 법의 보호적 기능과 타락 가능성 사이의 긴장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정당한 법’의 기준을 명확히 세우는 것이 필수적이다. 그렇다면 그 기준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이 제기된다. 과연 무엇이 정당한 법을 정당한 법이게 하는가? 토마스의 대답은 자연법과 영원법의 관계 속에서 제시된다.



자연법의 제1원리: ‘선을 행하고, 악을 피하라’


토마스는 우선 사변적 학문의 영역에서 이성의 제일원리인 모순율이 있는 것처럼, 도덕의 영역에는 ‘선을 행하고 추구하며, 악을 피해야 한다’(I-II,94,2)는 윤리의 제1원리가 있다고 주장한다. 극히 단순해 보이는 이 원리에서 제시된 객관적인 선이 무엇인지를 토마스는 ‘자연법(lex naturalis)’의 사상 안에서 찾는다.


이미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스토아학파 그리고 특히 아우구스티누스는 ‘자연적인 윤리 법칙’이라는 사상과 용어를 사용했다. 토마스는 이를 받아들여, 이성적인 피조물은 “영원한 이성 자체를 분유하게 되어, 그것을 통하여 마땅한 행동과 목적으로의 자연적 경향성을 갖는다”(I-II,91,2)고 말한다. 이러한 인간의 도덕률은 인간의 본성 자체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에 ‘자연법’이라고 불린다.


따라서 자연법은 인간 안에 새겨진 선(善)의 기준이다. 토마스에 따르면 인간은 자연적으로 생명을 보존하려 하고, 진리를 알고자 하며, 타인과 함께 사회를 이루어 살고자 한다?. 이러한 성향들은 단순한 본능이 아니라 인간 본성의 선한 방향을 드러낸다. 따라서 법은 이런 기본 성향들을 보호하고 질서 있게 실현하도록 도와야 한다. 예를 들어서, 생명 보존의 성향은 살인 금지와 안전 보호의 기초가 되고, 진리 추구의 성향은 교육과 양심의 자유를 뒷받침하며, 사회적 삶의 성향은 정의와 약속의 준수라는 원리로 이어진다. 자연법은 인간이 인간답게 살기 위한 최소한의 도덕 질서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인간이 만든 ‘인정법’은 이러한 자연법에 어긋나면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 그렇다면 이성에 의해서 반포된 자연법은 어떠한 초월적 근거도 지니고 있지 않을까? 토마스는 자연법을 ‘이성적 피조물의 영원법에 대한 참여(participatio)’(I-II,91,2)라고 정의한다. 즉, 모든 인간이 이성적으로 동의할 수 있는 자연법도 그 뿌리를 신적인 영원법에 두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가 말하는 ‘영원법’이란 무엇인가?


법에 도덕적 기초가 결여되면 인간 존엄성 해치고 혼란 야기


영원법에 근거한 자연법으로 실증법의 자의적 횡포에 맞서야


인간 본성 속의 선을 실현하고 진정한 행복에 도달할 수 있어


법의 형이상학적 토대: 영원법


‘영원법(lex aeterna)’은 온 우주를 다스리는 신적 지혜 그 자체로서, 모든 피조물을 각자에게 적합한 행위와 목적으로 인도하는 궁극적인 근거가 된다.(I-II,93,1) 토마스는 자연법이나 영원법이 자의적이거나 독단적이라는 주장을 피하기 위해, 영원법이 본래 신의 의지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본성의 범형적인 이데아를 생각하는 신의 지성에 근거함을 밝혔다. 우주의 질서와 만물의 운동은 우연의 산물이 아니라 영원법에 의해 규정된 목적론적 체계 속에 존재한다.


따라서 모든 정당한 인간 법체계는 영원법이라는 거대한 질서의 한 부분으로 이해되어야 하며, 인간의 법은 영원법이 가리키는 객관적 진리를 반영할 때만 진정한 법으로서의 권위를 갖는다.(I-II,93,3) 영원법은 법이 권력자의 자의적인 의지로 변질되지 않도록 막아주는 최후의 보루가 된다. 인간은 이 영원법 전체를 직접 파악하지는 못하지만, 이성적 존재이기 때문에 그것에 참여할 수 있다. 


자연법을 통한 인간 존엄과 행복의 수호


토마스 아퀴나스가 정초한 자연법과 영원법의 체계는 인간의 행복을 지키기 위한 가장 견고한 형이상학적 울타리다. 인간이 추구하는 영원한 행복(지복직관)이 그의 자연적 능력을 넘어서는 것이기 때문에, 인간은 신의 힘으로 주어진 영원법에 의해서 인도되어야 한다. 이러한 토마스의 통찰은 현대 법치주의가 망각하기 쉬운 도덕적 좌표를 제시한다. 


법은 힘의 논리가 아니라 인간 존엄성이라는 보편적 실재를 수호하기 위한 이성적 기획이어야 한다. 이 점은 현대 인권 개념과도 밀접하게 연결된다. 표현의 자유, 양심의 자유, 평등권, 신체의 자유와 같은 기본권은 국가가 임의로 부여한 혜택이 아니다. 그것들은 인간이 인간으로서 마땅히 존중받아야 할 존엄을 지키기 위한 조건들이다.


토마스의 사상은 ‘인간 존엄성’이 법적 관습이나 합의에 의해 부여되는 것이 아니라, 영원법에 참여하는 이성적 본성으로부터 유래하는 형이상학적 실체임을 일깨운다. 자연법은 실증법이 저지를 수 있는 자의적인 횡포에 맞설 수 있는 절대적인 비판 기준을 제공한다. 결국 자연법을 따르는 ‘정당한 법’만이 인간을 억압하거나 통제하지 않고, 모든 인간이 자신의 본성적 선을 온전히 실현하고 공동체 안에서 진정한 행복에 도달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다.



글 _ 박승찬 엘리야(가톨릭대학교 철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