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묵상]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가톨릭신문)

영적 고전 「러시아에서 그분과 함께」의 저자인 월터 J. 취제크 신부님은 1940년 위장 이주노동자로 소련에 잠입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체포되었습니다. 강제노동 수용소라는 극한 상황에서도 그분은 비밀리에 미사를 봉헌했습니다. 


23년 만에 미국으로 귀환하기까지의 긴 세월 속에서, 마지막 미사를 봉헌한 지 5년 만에 다시 드린 어느 날의 미사를 신부님은 잊지 못했다고 회고합니다. 건포도로 만든 미사주와 부엌에서 간신히 구한 빵, 위스키 유리잔과 회중시계 뚜껑을 성작과 성반 대신 사용해 봉헌한 그 미사의 기쁨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강제노동 수용소라는, 인간의 존엄이 철저히 짓밟히던 자리에서 이루어진 그 미사의 중심에는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있었습니다. 바로 그 거룩한 양식이 그들의 참된 생명이었습니다. 그들을 지탱한 힘은 더 많은 음식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그들의 삶을 붙들고 계심을 깨닫게 해 준 성체였습니다.


우리가 먹는 양식은 단순히 생존을 유지하는 수단이 아니라, 우리의 삶과 신앙을 형성합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길러낸 양식은 만나였습니다. 그래서 신명기는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이 빵만으로 살지 않고, 주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신명 8,3)


우리는 살기 위해 매일 양식을 먹습니다. 주님의 기도에서도 우리는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라고 청합니다. 그런데 성찬례에서 우리가 먹는 양식은 단순한 빵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과 피입니다. 우리는 그분을 먹고 마심으로써 그분과 하나가 되어 예수님의 마음과 삶의 방식을 닮아가게 됩니다. 이 양식은 우리 존재 깊은 곳에서 하느님을 갈망하는 굶주림을 채우며 우리를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빚어 갑니다.


예수님은 “너희가 사람의 아들의 살을 먹지 않고 그의 피를 마시지 않으면, 너희는 생명을 얻지 못한다”(요한 6,53)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받아 모신다는 것은, 하느님의 생명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오로는 이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우리가 축복하는 그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동참하는 것이 아닙니까? 우리가 떼는 빵은 그리스도의 몸에 동참하는 것이 아닙니까?”(1코린 10,16)


‘살과 피’는 성경에서 한 인간의 생명과 존재 전체를 뜻합니다.(마태 16,17; 1코린 15,50; 히브 2,14 참조)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살과 피’는 그분의 생명 전체, 곧 예수 그리스도 자신을 온전히 내어주시는 선물입니다. 주님께서는 이를 통해 우리를 당신과의 친교 안으로 초대하시며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른다”(요한 6,56)고 선포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가장 일상적인 빵과 동일시하며,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요한 6,51)라고 선언하십니다. 이는 그분이 우리의 일상과 배고픔 속으로 들어오신 분임을 드러냅니다. 우리가 빵을 매일 먹어야 하듯이, 성체는 우리에게 없어서는 안 될 양식이며 우리는 이를 통해 그분과 점점 더 일치하게 됩니다.


성체는 우리의 내면을 변화시키고 우리의 삶을 그리스도화합니다. 우리가 먹는 양식이 우리를 형성하듯이, 영적 양식인 성체는 우리를 그리스도인의 삶으로 이끌어 갑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빵을 먹는 사람은 그분과의 친교 안에 머무릅니다.


우리는 성찬례에 참여함으로써 개인의 영적 성장 안에서 성체의 소중함을 새롭게 깨닫습니다. 동시에 공동체적으로도, 성찬례에 참여하는 우리는 바오로 사도의 고백처럼 “빵이 하나이므로 우리는 여럿이라도 한 몸입니다”(1코린 10,17)라는 진리 안에서 상호 일치와 친교의 형제애를 살아가게 됩니다. 성체를 모시는 우리는 서로 나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받아 모시는 우리는, 서로에게 형제가 되도록 부름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성체는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아갈 것인지를 묻는 양식입니다. 우리가 모시는 그 빵이 오늘 우리의 삶이 되게 합시다.



글 _ 전봉순 그레고리아 수녀(예수 성심 전교 수녀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