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유년 시절,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미움과 분노가 뒤섞인 차가운 관계였다. 할머니에게 불같이 화를 내며 밥상을 엎으시던 할아버지의 서슬 퍼런 모습, 할아버지 보란 듯 작은 실수만 있어도 매를 들고 화를 내며 때리시던 아버지. 부자는 상대에게 소리치며 싸우지는 않았지만 자신들의 아내와 자식들에게 그리도 화를 내며 지내셨다. 결국 할아버지는 우리가 사는 집에서 불과 30미터 떨어진 곳에 작은 움막을 지어 스스로를 유배시키셨다. 가족과 함께 살면서도 차마 한 울타리 안에 머물지 못했던 그 30미터의 거리는, 우리 가족이 대대로 짊어져 온 상처의 깊이와도 같았다.
늘 소화가 안 되던 할아버지는 손자인 나에게 약심부름을 시키곤 하셨다. 그러면 할아버지는 움막 한구석에 숨겨두었던 황도 통조림을 꺼내어 내게 건네주셨다. 폭군 같은 노인이 건네는 황도의 달콤함은, 가족에게 표현이 어색한 할아버지에겐 최선의 사랑 표현이었음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 아버지는 그런 할아버지를 미워하며 지냈지만, 세월이 흘러 마주한 아버지는 당신이 그토록 미워했던 할아버지의 뒷모습을 닮았다.
결혼 전, 나의 가장 간절한 기도 제목은 이 상처의 고리를 끊어내는 것이었다. 하지만 결혼 후 지금까지 부모님과 한 지붕 아래 살며 마주한 현실은 시렸다. 아버지의 호통과 그 뒤에 숨겨진 손주들의 사랑을 받고 싶은 마음 사이에서, 아이들은 늘 혼란스러워했다.
할아버지의 서툰 다정함조차 위협으로 느낀 아이들은 할아버지를 피해 방으로 숨어들었고, 아버지는 그런 손주들이 피하는 모습을 보며 화를 내곤 하셨다. 그런 이후엔 아이들은 더욱 할아버지를 마음에서 더 멀게 피하곤 했다. 꼭 우리 할아버지가 물리적인 30미터 움막의 거리에서 사신 것과 같이 아버지와 아이들은 심리적 30미터 움막의 거리를 두고 사는 듯했다.
주님께서는 ‘수술’이라는 예기치 못한 도구로 이 낡은 움막의 문을 두드리셨다. 한 달 전 쓸개 제거 수술에 이어 담석 제거를 위해 다시 입원하신 아버지는, 더는 호령하던 호랑이가 아니셨다. 아버지는 왜 왔냐고 하시면서도 몸 상태와 지난 수술 얘기 등을 하셨다.
떠나기 전, 어머니의 기도 권유로 나는 용기를 내어 아버지의 손을 잡았다. 기도가 시작되자 아버지는 어색해하며 피하시기는커녕 제 손을 더 꼭 맞잡으셨다. 곁에서 지켜보시던 어머니의 눈시울이 붉게 젖어 드는 동안, 투박한 손에서 느껴지는 온기를 느끼며 그 시간을 감사했다.
“주님 사랑하는 당신의 아들 바오로에게 자비를 베푸셔서 주님과 화해하고 이 수술을 통해 회복하게 도와주소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주님의 일하심이 얼마나 섬세한지 느꼈다. 육신의 수술을 통해 주님은 아버지의 소중함을 느끼게 해주셨다. 할아버지의 움막에서 느꼈던 그 황도의 사랑 표현처럼, 아버지와 내가 서로에게 기도로 사랑을 표현할 기회를 주셨다고 본다.
이제 남은 수술을 주님께 온전히 맡겨드린다. 아버지가 회복되어 돌아오시는 날, 이번에는 아이들이 할아버지의 손을 먼저 잡을 수 있는 용기를 내어주길 소망한다. 그 심리적 30미터, 움막의 거리가 이제는 더 가까워져 서로를 이해하며 살아가기를 기원한다.
글 _ 우기홍 미카엘(연극배우, 가톨릭 세계복음화 ICPE 선교회 한국지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