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중하게 고르는 말의 힘

(가톨릭신문)

얼마 전 레오 14세 교황께서 회칙 「고귀한 인류(Magnifica Humanitas)」를 발표하시면서 “인공지능(AI)은 무장해제” 되어야 한다고 하셨지요. 뒤이어 “좀 센 단어 같지만 신중하게 골랐다(deliberately chosen)”는 말씀을 덧붙이시면서요. AI가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자본에 복무하는 방식으로 이용되는 문제를 짚으며, 교황께서는 기술 권력이 주도권을 잡는 현실에서 노동자의 권리와 다음 세대의 교육에 있어 공동선을 위한 인류의 과제를 앞세우는 것이 중요함을 강조하셨습니다. AI에 거부할 수 없이 모두가 맹목적으로 끌려가는 것 같은 시절에, 울림이 있는 말씀이었어요.


이번 학기 강의를 하면서 저는 생성형 AI가 학생들의 교육 환경 격차를 더 심화시킨다는 걸 절감했어요. 어떤 학생은 유료 AI를 여럿 맞춤으로 구매해 쓰면서 과제를 하고, 어떤 학생은 그런 도움 없이 ‘맨땅에 헤딩하듯’ 끙끙대며 과제를 하네요. AI 시대 학생들의 인지력과 절제력, 판단력을 잘 키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텍스트를 잘 읽는 힘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기에, 생각할 시간도 없이 던져주는 AI의 화려한 답은 편리하긴 해도 막상 배움에는 큰 도움이 안 될 때가 많아요.


답을 고민하는 시간에 배움이 있다는 걸 확신하는 저는 텍스트를 읽을 때 자신과 텍스트가 정직하게 대면해야 한다고, 다른 이의 해석과 AI의 섣부른 개입, 편리한 줄거리 해석에 의존하지 말라고 강조합니다. 그러나 학생들은 손쉽게 답을 주는 AI의 유혹을 쉽게 거절하지 못하지요. 그래서 수업 중에 질문을 많이 던지고 글을 쓸 때도 자기 경험 안에 목소리를 녹여 내는 걸 강조했어요.


교실에는 문화자본, 교육자본의 혜택을 많이 받은 학생과 그렇지 않은 학생이 함께 앉아 있어요. 이번 학기에 전시회를 보고 글을 쓰는 과제를 내줬는데 전시회를 처음 가봐서 그림을 어떻게 봐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학생이 있고, 전시회 다니는 게 취미라서 용돈을 거기 다 쓴다는 학생이 있네요. 교육의 장에서라도 이러한 문화자본의 격차를 줄여나가는 게 바람직한데, AI 광풍이 그 격차를 늘이는 건 아닌지 돌아봅니다.


강의 마지막에 교황의 말씀을 인용하면서 어떤 메시지를 전할 때 의도적으로 세심하게 단어를 선택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이야기해 보았어요. 화려한 말 잔치가 쉽게 사람을 움직이는 것 같지만 그게 아니라고요.


우리가 길러야 할 지혜로운 식별력은 오랜 훈련과 경험을 통해 만들어지는데, 그 훈련에는 더듬어 숙고하고 이 세계와 나의 관계를 찬찬히 생각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상상하는 눈이 필요하다고, 인간됨의 의미라든가 이 세계에서 공동선을 추구하며 살아야 할 책무 같은 것도 함께 생각해야 한다고요. 이런 것들은 긴 호흡으로 보고 읽는 시간 속에서 만들어진다고요.


“이번 학기 저는 유행을 맹목적으로 따르지 않고 찬찬히, 주체적으로 고민하고 선택하는 삶이 중요하단 걸 배웠어요. 글도 그렇게 신중하게 써야 한다고요.”


한 학생의 메시지를 선물로 받으며 또 작은 시간의 매듭을 묶습니다.



글 _ 정은귀 스테파니아(한국외국어대학교 영미문학문화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