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도 같은 시간, 일터로 간다는 것

(가톨릭신문)

“직업재활시설 입장에서 더 큰 문제는, 공공 일자리가 장애인 노동의 중심축을 단기적인 공공 참여와 상징적 활동 쪽으로 이동시키는 효과를 낳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5월 28일 서울가톨릭장애인복지시설협의회 세미나에서 서울 서초구립 한우리보호작업장 정영수(체레알리스) 원장은 공공 일자리가 내실이 있으려면 직무훈련과 직업적응, 보호고용, 전환지원으로 이어지는 체계 안에서 작동해야 한다고 전했다. 특히 고령장애인에게 필요한 것은 일회성 참여가 아니라, 매일의 리듬을 유지하고 건강 변화에 대응하며 관계와 소득을 지속시키는 구조라고 강조했다


‘일자리’라는 말을 다시 생각했다. 우리는 흔히 장애인 일자리의 성과를 참여 인원, 예산 규모, 활동 건수 등 수치로 확인한다. 산술적 참여도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것이 직업재활의 본질을 대신하는 순간, 일은 삶을 지탱하는 기반이 아니라 일회성 행사처럼 소비될 수 있는 게 아닐까.


장애·비장애를 막론하고, 인간에게 일터란 마치 숨을 쉬는 것처럼 삶의 필수 여건이다. 우리는 일터에서 자기 효능감을 찾고, 일상 리듬을 지키며, 돌봄·부양 부담을 덜고, 인간관계를 맺으며, 내일도 같은 시간 출근해 삶을 이어갈 이유를 얻는다. 더욱이 일터는 고령장애인에게는 복지 수혜자 입장을 넘어 존엄하게 늙어갈 수 있게 해주고 돌봄, 건강, 관계, 소득을 종합 보장하는 삶의 축이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사회 회칙 「노동하는 인간」도 “인간 노동은 전체 사회문제의 열쇠”(3항)라고 밝힌다. 그래서 기도하게 된다. 장애인 노동이 시혜나 참여 실적을 넘어 ‘인간’이 존엄하게 늙어 갈 수 있는 구조로 자리 잡기를.


박주현 기자 ogoya@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