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100주년 특별기획 – 교회와 함께 민족과 함께] (61) ‘새로운 양 찾기’, 대규모 선교운동 확산

(가톨릭신문)

“전 신자가 조직적, 체계적으로 전교에 나서 큰 성과를 거둔 본당이 있어 화제가 되고 있다.

인천교구 만수1동본당(주임 김병상 필립보 신부)이 지난 4월부터 본당 사목협의회를 중심으로 「새로운 양 찾기」 운동을 펼쳐 6월 25일 오후 2시 470여 명의 입교 희망자와 인도자, 본당 신자 등 2000여 명이 모인 가운데 첫 모임을 가졌다.

이날 입교식 행사를 한 예비자들은 모두 42개 반으로 나눠 각 반당 1명의 봉사자가 이끄는 10명 내외의 소공동체로 조직, 영세 때까지의 제반 신앙생활을 안내하게 된다. 특히 내년 1월로 예정된 영세식까지 6개월간의 예비자 교리교육을 기존의 예비자교리 교육 방식이 지닌 단점을 보완하는 소공동체 형식으로 진행할 계획이다.

본당 전 신자가 기도운동과 함께 전교 활동의 일환으로 펼친 「새로운 양 찾기」 운동은 본당 단위의 전교 활동의 한 모범적인 예로 평가되고 있다.”(가톨릭신문 1995년 7월 2일자 14면)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한국교회는 성장률의 급격한 둔화와 냉담자 증가라는 구조적 위기 상황에 직면했습니다. 1970년대와 1980년대 천주교회는 민주화 운동과 사회 정의 구현에 적극 참여하며 급속한 교세 확장을 이루어냈습니다. 하지만 이후 세속화, 물질주의의 확산, 그리고 본당 구조의 대형화 및 중산층화 현상이 맞물리면서 신영세자 수의 증가율이 크게 떨어지기 시작했고, 냉담 교우의 비중과 주일미사 불참률이 치솟았습니다.

인천교구 만수1동본당 선교운동, 적극 참여 속 신영세자·예비신자 대거 배출

대규모 선교운동 전국으로 확산… 한계도 있지만 선교 패러다임 전환 이끌어

둔화된 성장과 치솟는 냉담률

가장 직접적인 배경은 신자 증가 속도의 둔화였습니다. 1980년대 한국교회의 연평균 신자 증가율은 7% 후반대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1990년대 들어와서 지속적으로 감소 추세를 보이다가 1996년과 1997년에 이르러서는 각각 약 3.2%에 머물렀습니다. 냉담자와 거주불명자는 전체 신자의 4분의 1에 달했습니다.

이같은 현상의 밑바탕에는 선교 의식과 문화의 문제가 있었습니다. 전통적으로 천주교 신자들은 조용하고 엄숙하며, 개인의 영성 생활을 중시하는 ‘점잖은’ 태도를 미덕으로 삼아왔습니다. 이는 개신교의 적극적 선교 방식과 대비되는 동시에, 비신자들에게 능동적으로 다가가지 못하는 소극성과 폐쇄성의 원인으로 지목되기도 했습니다.

선교의 위기가 대두되면서 천주교회도 소극적 태도에서 벗어나 복음 선포 활동을 활성화해야 한다는 자각이 일어났습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등장한 것이 인천교구 만수1동본당을 시작으로 전국에 폭발적으로 확산된 ‘새로운 양 찾기’ 및 ‘잃은 양 찾기’ 운동이었습니다.

만수1동본당의 혁신적 선교 활동

1994년 하반기, 만수1동본당에서 시작된 혁신적인 선교 운동은 냉담 신자들에 대한 안타까움에서 시작됐습니다. 당시 주임 김병상 신부의 사제 은경축을 맞아 물질적 선물 대신 냉담 신자를 다시 공동체로 모셔 오는 영적 예물을 봉헌하자는 제안이 계기가 됐습니다.

만수1동본당은 1994년 12월, 냉담교우들의 회두를 목표로 한 제1차 ‘잃은 양 찾기 운동’을 전개했습니다. 체계적 방문과 꾸준한 관심, 편지 보내기 등을 통해 냉담자의 행적을 파악하고 이들을 영성표에 재입적시킴으로써 판공성사 참례율을 65%까지 끌어올리는 획기적인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이를 통해 얻은 자신감을 바탕으로 1995년 2월, 비신자를 대상으로 한 제1차 ‘새로운 양 찾기 운동’에 돌입했습니다. 그 결과 1차 운동을 통해 481명의 신영세자를 배출했고, 2차 운동에서는 600여 명이 입교해 단 두 차례의 집중 선교만으로 1000명이 넘는 예비신자를 배출했습니다.

선교운동의 전국적 확산

만수1동본당의 성과는 가톨릭신문 등을 통해 집중적으로 보도되면서 전국으로 확산돼, 20여 개 이상의 본당이 각자의 사목적 여건에 맞추어 이 운동을 도입했습니다. 군포본당의 경우 단 한 차례의 운동으로 1195명의 예비자를 입교시키는 성과를 냈고, 청주교구와 인천교구 등은 교구 차원의 장기 복음화 계획과 연계해 운동을 전개했습니다.

이는 대구대교구 이판석(요셉) 신부 등이 주도한 ‘가두선교’ 및 ‘방문선교’ 모델과 결합하면서 더 큰 효과를 냈습니다. 가두선교단이 제작한 안내 책자 「천주교를 알려드립니다」는 8년간 전국 900여 개 본당과 150여 개 단체에 보급돼 330만 부 이상 발행되는 기록을 세웠고, 330개 본당에서 5만 5000명 이상이 가두선교 연수를 수료하고 거리로 나섰습니다.

대규모 선교운동의 성과

‘새로운 양 찾기’ 운동이 가져온 가장 일차적이고 눈에 띄는 성과는 신영세자 수의 비약적 증가였습니다. 대부분 본당에서 적게는 2~3배, 많게는 5배 이상의 신영세자를 배출했습니다. 이러한 양적 성장은 침체 일로를 걷던 교세 성장률에 일시적 반등의 기회를 제공했으며, 1998년과 1999년의 전체 입교자 수 증가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양적 성과보다 더 큰 의미를 갖는 것은 신자들의 의식 변화였습니다. 외적 신앙 표현을 쑥스러워하던 신자들이 이 운동을 체험하면서 능동적 선교 주체로 거듭났습니다. 선교 활동에 앞서 전개된 기도 운동과 성경 공부는 느슨했던 영성을 재무장시켰고, 이웃에게 교회를 알리는 과정에서 자신의 신앙을 되돌아보는 영적 쇄신을 경험하게 했습니다.

비판적 평가와 한계

1990년대 말 폭발적인 열기 속에서 추진되었던 대규모 선교운동은 수년의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열기가 잦아들었고, 이벤트성 선교운동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 제기됐습니다. 가톨릭신문은 1998년 ‘전교의 달’ 기획 특집에서 다음과 같이 그 한계를 지적했습니다.

“상당한 인력과 재정이 투여돼야 하는 한시적 운동으로서 선교 의식의 진작을 위한 초기 단계의 선교 전략이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선교는 모든 그리스도인의 소명으로 삶의 전체를 통해 수행해야 하는 의무인데 이같은 한시적 운동이 궁극적인 대안이 될 수는 없다. 두 번째는 대규모 인원이 한꺼번에 영세를 할 경우, 예비자 교리교육이나 영세 후 신앙생활이 충실하게 이어질 수 있겠는가 하는 의문이다. 세 번째는 대개 본당들이 생활 수준, 신자 계층 분포 등 모든 면에서 서로 많은 편차를 보이고 있는 점을 고려할 때 새로운 양 찾기를 사목 환경에 따라 적용할 수 있는 사례 연구가 필요하다.”(가톨릭신문 1998년 10월 18일자 16면)

이처럼 비록 한계와 부작용이 지적되기는 했지만, 한국교회 초유의 이 대규모 선교운동은 ‘찾아 나서는 교회’로의 선교 패러다임 전환을 이끌어낸 의미 있는 사목적 시도였으며, 신자들에게 선교 열정을 불어넣은 큰 계기가 됐습니다.

박영호 기자 young@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