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100주년 특별기획 – 교회와 함께 민족과 함께] (67) 인간 배아 실험 둘러싼 논란 본격화

(가톨릭신문)

“과학기술부 산하 생명윤리자문위원회가 5월 18일 발표한 생명윤리기본법 시안이 이른바 ‘냉동 잉여 배아’에 대한 연구를 허용함으로써 ‘인간의 생명은 수정과 동시에 시작된다’는 종교계의 입장에 배치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천주교와 개신교 등 종교계는 5월 22일 공청회에서 이같은 입장을 전달한 데 이어 23일 공동 기자회견을 갖고 ‘인간 배아 복제 및 인간 배아 실험을 중단하고 질병 치료의 다른 대체 치료책을 개발할 것’을 골자로 하는 선언문을 발표했다. 또 주교회의 생명윤리연구회도 26일 열리는 긴급회의에서 법안에 대한 교회의 대처 방안을 논의했다.

반면 의료계와 생명공학계는 이번 법안 시안이 지나치게 생명과학 연구를 규제함으로써 미래 산업인 생명공학의 발달을 크게 저해할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생명윤리 전반을 포괄하는 지침이라 할 수 있는 ‘생명윤리기본법’ 시안은 체세포 핵이식에 의한 인간 배아 복제는 금지하되 불임치료 목적으로 체외수정에 의해 만들어진 냉동 잉여 배아를 이용한 인간 배아 연구는 한시적으로 허용하고 있다.”(가톨릭신문 2001년 5월 27일자)

‘복제 인간’ 탄생 우려, 생명윤리 확보 위한 법안 마련

1980년대 초반 한국 사회에서는 정보통신, 신소재 그리고 생명과학 등 이른바 첨단기술을 차세대 국가 성장 동력으로 육성해야 한다는 요구가 본격화됐습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1997년 영국에서 정자와 난자의 수정 과정을 거치지 않은 체세포 복제 동물인 복제 양 ‘돌리(Dolly)’가 탄생했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전 세계에서는 생명과학 기술의 무한한 가능성과 더불어 이른바 ‘복제 인간’의 탄생 가능성을 두고 윤리적 논란이 일기 시작했습니다.

동일한 체세포핵 DNA를 가진 개체의 생성이 가능하다는 사실은 기존의 의과학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뒤흔드는 일이었고, 이는 생명과학의 무분별한 발전을 제어하기 위한 윤리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공감대를 불러왔습니다. 이에 따라 생명공학 분야에서 생명윤리와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국가적 차원의 규범 마련이 시급한 과제로 부상했습니다.

이러한 시대적 요구에 부응해 정부 내에서도 생명공학의 윤리와 안전 문제를 규율하기 위한 논의가 시작되었습니다. 보건복지부와 과학기술부가 각각 법안 마련에 착수했고, 그 결과 2001년 5월 정부 기관인 생명윤리자문위원회를 통해 우리나라 최초의 생명윤리 관련 법안 시안이 발표됐습니다.

2001년 생명윤리기본법 시안, 윤리적 규제와 현실적 절충

생명윤리 관련법 입법 과정 내내 윤리적 당위성과 현실적 타협의 입장이 치열하게 대립했습니다. 즉, 배아를 인간 생명의 기원으로 보고 엄격히 보호해야 한다는 윤리적 당위성과, 배아 연구를 통해 난치병을 치료하고 국가 경제의 신성장 동력을 창출해야 한다는 공리주의적 현실론이 격렬하게 맞부딪혔던 것이지요.

그 시발점이 된 2001년 5월 생명윤리자문위원회의 ‘생명윤리기본법(가칭)’ 시안은 생명과학의 도구적 이용으로부터 인간 생명의 존엄성을 수호하기 위해 배아 관련 연구를 매우 엄격하게 제한했습니다. 우선, 체세포복제배아를 자궁에 착상시키거나 출산하는 인간 개체 복제 행위를 전면 금지했습니다. 또한 이종 간 교잡, 인간 배아와 동물 배아의 융합 등을 철저히 금지했습니다. 특정 성을 선택할 목적으로 정자와 난자를 선별하거나, 연구만을 목적으로 배아를 새롭게 생성하는 행위 역시 강력히 통제했습니다.

그러나 시안은 난치병 환자들의 절박한 생존권과 생명공학계의 학문적·산업적 발전 요구라는 현실적 입장을 완전히 무시하지는 못했습니다. 먼저, 배아 연구를 일률적으로 금지한 것이 아니라, 불임 치료 목적으로 인공수정 과정에서 생성되었다가 임신에 사용하고 남은 ‘잔여배아(잉여배아)’에 한해서는 한시적으로 질병 치료 및 연구 목적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가톨릭신문은 이에 대해 “시안은 인간 생명의 존엄성이라는 원칙과 생명공학 연구의 필요성이라는 두 가치 사이의 절충안을 모색하기 위한 소산으로 보인다”고 평가했습니다. 하지만 시안이 ‘체세포 복제 금지’라는 대원칙을 고수했다는 측면에서는 윤리적 원칙을 확고하게 지켰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입법 과정의 후퇴와 2004년 생명윤리법의 제정

국내 생명산업계는 생명공학의 발전을 선점해 상업적 이익을 극대화하고자 했고, 정부는 바이오산업의 성장을 통해 국가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생명산업계를 지지했습니다. 결국 시안의 기본 입장은 이후 생명윤리법의 입법 과정에서 무시됐고, 우리나라 첫 생명윤리 관련법은 이 시안보다도 훨씬 후퇴됐습니다.

시안 발표 직후, 과학기술계와 관련 산업계는 시안이 생명공학 연구를 위축시키고 국가 경쟁력을 심각하게 저해할 것이라며 강력한 반대 입장을 표명했습니다. 관련 법제의 주도권을 둘러싸고 과학기술부와 보건복지부 간의 시각차도 드러났습니다. 인간 배아 연구를 엄격히 제한해야 한다는 과학기술부 산하 자문위원회의 입장과 달리 보건복지부는 2002년 1월 산하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을 통해 질병 치료 목적의 줄기세포 및 배아 연구를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러한 논란의 와중에 생명공학 육성을 통한 국부 창출이라는 입장이 윤리적 신중론을 압도했습니다. 결국 2004년 1월 제정되고 2005년 1월 1일자로 시행된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이하 생명윤리법)은 2001년 시안의 근본정신에서 크게 후퇴한 타협적 산물로 귀결됐습니다.

이 생명윤리법은 시안의 기본적인 윤리 강령들을 대부분 명문화했지만, 가장 핵심적인 윤리적 쟁점이었던 ‘체세포복제배아’의 생성에 관하여 치명적인 예외 조항을 신설함으로써 사실상 규제의 빗장을 풀어버렸습니다. 시안이 전면 금지했던 체세포핵이식행위를 ‘근이영양증 등 특정 희귀·난치병의 치료를 위한 연구’라는 목적하에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보건복지부 장관의 승인을 받은 경우 합법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준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이 법은 질병 치료와 과학 발전이라는 명분 아래 연구자들에게 체세포 복제를 통한 배아줄기세포 확립을 허용했습니다. 이에 따라 법 적용 과정에서 가장 빈번하게 과학적 쟁점과 윤리적 논란이 제기되는 체세포복제배아 분야에 대해 규제망을 허술하게 구축함으로써 생명과학 분야에서 윤리적 재앙을 초래하게 됩니다. 전 세계적인 사기극으로 판명된 ‘황우석 사태’가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박영호 기자 young@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