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묵상] 연중 제29주일, 전교 주일

(가톨릭신문)

갓 태어난 아기의 시력은 그리 좋지 않습니다. 색깔을 구별 못 하고, 시야도 흐립니다. 그러나 본능적으로 눈에 힘을 주어서 보려고 합니다. 그래서 20~30cm 정도 거리에 있는 물체를 보게 됩니다. 바로 아기를 품에 안았을 때 부모의 얼굴과 아기 얼굴 사이의 거리입니다. 이 거리에서 아기는 빤히 쳐다봅니다. 결속과 유대의 대상임을 느끼는 것입니다.

신앙인도 눈에 힘을 꽉 주고 또 크게 뜨고 누군가를 바라봐야 합니다. 결속과 유대를 느껴야 이 세상을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누군가가 바로 주님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눈에 힘주지도 않고, 눈을 감고만 있습니다. 아예 관심을 두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하느님이 어디 계셔?”

노력했습니까? 하루 중 눈에 힘 꽉 주고 찾아봤습니까? 기도하면서 그분과 시선을 맞추려고 했습니까? 그런 노력을 전혀 하지도 않고 안 계신다고 말하는 것이 아닐까요?

부모가 아이에게 주는 가장 큰 선물은 오랫동안 아이를 바라보는 것이라고 합니다. 사랑 자체인 주님께서는 우리를 계속 바라보십니다. 바로 지금, 이 순간도 보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떨까요? 우리 역시 주님을 바라봐야 합니다.

오늘은 전교 주일로, 복음에서는 교회의 본질이 왜 전교에 있는지를 체계적으로 밝힙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열한 제자는 분부하신 산에서 뵙고 엎드려 경배합니다. 그런데 의심하는 사람도 있음을 이야기합니다. 이 의심은 주님을 반대하고 거부하는 배교를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보다 ‘확신과 흔들림 사이의 주저함’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전교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주저합니다. 왜냐하면 자기의 믿음이 부족하다는 것, 세상 것에 너무 쉽게 흔들리고 넘어지는 존재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전교는 모든 의문이 해소되고 완벽한 성덕에 도달한 사람만 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부족함, 상처, 인간적 나약함을 지닌 불완전한 공동체가 부활하신 분의 부르심에 기대어 첫발을 내딛는 것이 전교의 출발점입니다. 그래서 주님과 시선을 맞추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주님께서도 우리의 나약함을 아시고 이렇게 말씀하시지 않습니까?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 28,20)

앞에서도 말씀드렸듯이, 주님께서는 단 한 순간도 우리에게서 시선을 떼어놓지 않으십니다. 우리의 머리카락 숫자까지도 다 세고 계신 분이십니다. 이런 분이기에 언제나 우리와 함께 계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어떻게 해야 할까요?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마태 28,19)

적극적으로 전교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자기가 완벽해질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주님과 시선을 맞추면서 주님의 뜻을 세상에 알릴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이를 제1독서의 이사야 예언자는 “주님의 빛 속에 걸어가자!”(이사 2,5)라고 외칩니다. 그래야 모든 민족이 주님의 집이 서 있는 산으로 밀려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신부가 되고 5년쯤 되었을 때였습니다. 인터넷에 올리기 시작했던 ‘새벽을 열며’라는 묵상 글이 사람들의 좋은 반응을 얻고 있었고, 여기에 방송, 강의 요청 등을 계속해서 받게 되었습니다. 신기했지만, 동시에 두려웠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그렇게 훌륭한 사람이 아닌데….’라는 생각이 컸기 때문입니다. 

묵상 글은 남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나와 하느님의 성실한 관계를 만들기 위해 쓴 것뿐인데 예상하지 못했던 너무 많은 사랑을 받게 된 것입니다. 이 고민을 선배 신부님께 털어 놓았습니다. 그러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네 안에서 활동하시는 하느님의 힘을 왜 무시해?”

내가 쓰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나를 도구 삼아 쓰시는 것입니다. 나의 완벽함 때문에 쓰시는 것이 아니라, 완벽하지 않기에 완벽한 당신을 드러내기 위해 쓰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나’라는 틀에 갇혀서 정작 하느님을 보지 못했습니다. 하느님의 시선에 눈을 마주쳐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던 것입니다.

우리의 할 일은 나를 드러내는 삶이 아닙니다. 그보다 나를 통해 활동하시는 하느님을 세상에 드러내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바오로 사도의 “그들의 소리는 온 땅으로, 그들의 말은 누리 끝까지 퍼져 나갔다”(로마 10,18)라는 말씀이 실현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전교의 시작입니다.

글 _ 조명연 마태오 신부(인천교구 성 김대건본당 주임, 인천가톨릭대학교 카펠라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