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 속 예술, 예술 속 신앙] 요한 드 브레뵈프 〈예수께서 태어나셨다〉

(가톨릭신문)

10월 18일은 복음 선포의 사명을 되새기는 전교 주일이다. 1926년 비오 11세 교황이 제정한 전교 주일은 올해 100주년을 맞았고, 레오 14세 교황 역시 “순례하는 교회는 그 본성상 선교하는 교회”임을 재차 강조했다.(「만민에게(Ad Gentes)」, 2항 참조)

바로 다음 날 19일, 우리는 북아메리카에서 복음을 전하다 순교한 성 요한 드 브레뵈프와 성 이사악 조그, 그리고 동료 순교자들을 기억하게 된다. 전교 주일 이튿날, 머나먼 땅으로 건너가 그곳 사람들 곁에서 살아간 이들을 만나는 셈이다.

그중 브레뵈프(Jean de Brébeuf, 1593~1649)에게는 조금 특별한 노래 하나가 따라다닌다. 〈Jesous Ahatonhia〉. 웬다트(Wendat)어로 ‘예수께서 태어나셨다’라는 뜻이며 오늘날 휴런족 캐럴로도 알려졌다. 웬다트는 캐나다에 거주하는 북아메리카 원주민 부족 집단으로, 과거 휴런(Huron)족으로도 불렸다.

이는 오랫동안 웬다트 그리스도인 사이에서 불렸다. 오늘날에는 브레뵈프가 직접 썼다는 전승과 함께, 공동체의 오랜 구전 속에서 다듬어진 곡일 가능성도 제시된다.

선율의 이력도 흥미롭다. 이는 16세기 프랑스에서 불리던 곡 〈한 젊은 처녀(Une jeune pucelle)〉에서 왔다고 추정된다. 본래 원치 않게 수녀가 된 한 여성의 비애를 담은 세속의 노래였지만, 성모 영보와 마리아의 응답을 묘사한 가사로도 바뀌었다. 이것이 유럽 전역으로 퍼졌고, 선교사와 함께 바다를 건넜으며, 북미에 도착해 그곳 사람들의 말로 성탄 이야기를 품게 됐다.

당시 예수회원들은 노래가 북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삶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일찍 눈여겨봤다. 브레뵈프의 동료 폴 르죈(Paul Le Jeune)은 1633년 기록에서 이렇게 적었다. “그들이 숲에서 배운 것, 즉 교리 내용을 노래하는 소리를 듣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이 곡 역시 그런 맥락에 있다. 유럽의 옛 선율과 북미의 말과 문화가 어우러졌고, 그렇게 수백 년 동안 이어졌다. 오늘날 널리 알려진 영어 가사까지 더해지며 원곡과는 사뭇 달라졌지만, 후렴에는 오래된 문장이 남아 있다. “예수께서 태어나셨다.”

성 요한 드 브레뵈프와 성 이사악 조그, 동료들은 모두 잔혹한 방식으로 순교했다. 17세기 중엽 웬다트 마을들은 이로쿼이 연맹의 거센 공격에 시달리고 있었고, 현장에 있던 선교사들도 그 소용돌이를 피하지 못했던 것. 이사악 조그 신부는 1642년 이로쿼이족 분파였던 모호크족에게 붙잡혔고 탈출해 프랑스로 돌아갔지만, 다시 북미로 향했다. 그리고 1646년, 결국 모호크족의 손에서 세상을 떠났다.

브레뵈프 역시 1649년 자신이 선교하던 땅에서 성 가브리엘 랄르망 신부와 함께 이로쿼이족의 잔혹한 고문을 받고 순교했다. 이른바 ‘북미의 첫 순교자들’이 된 이들은 1930년 비오 11세 교황에 의해 시성되었다.

〈예수께서 태어나셨다〉의 소박한 가락에는 낯선 언어를 배우고, 그들의 말로 복음을 전했던 이들의 의지와 열망이 녹아 있다. 프랑스에서 출발한 곡은 대서양을 건너 웬다트족의 새 언어를 얻었고, 그리스도를 찬미하는 노래가 되었다. 그리고 지금도 같은 말을 기쁘게 되풀이한다. “용기를 내라. 사람들이여. 예수께서 태어나셨다.”

글 _ 박찬이 율리아나(음악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