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속 내 안의 빛을 찾는 노르망디 몽생미셸 수도원

(가톨릭평화신문)
몽생미셸섬과 고딕 양식의 몽생미셸 수도원. 노르망디와 브르타뉴 사이 거대한 모래톱의 섬으로 높이가 최대 80m에 달한다. 1998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프랑스 콤포스텔라의 길’의 일부로 루앙에서 시작되어 노르망디 내륙을 통과하는 프랑스 북부 순례길의 종착지다. 출처=shutterstock


프랑스 서북부 노르망디 해안 근처 작은 섬인 몽생미셸은 전설적인 관광명소로 꼽힙니다. 썰물에는 모래톱으로 연결됐다가 밀물에는 섬으로 바뀌는 곳인데, 노을이 드리운 드넓은 갯벌 위에 하늘을 찌를 듯 솟은 섬과 수도원은 천국의 성을 연상시키죠. 매년 관광객 약 400만 명이 이곳을 찾습니다.

몽생미셸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프랑스 콤포스텔라의 길’의 일부인데, 여기서 시작해 프랑스를 가로질러 몽세니스, 로마를 지나 가르가노 몬테산탄젤로에 이르는 ‘미카엘의 길’의 기점이기도 하지요. 지금도 자연과 영성이 한 폭의 그림처럼 어우러진 프랑스 북부의 순례길을 걷는 순례자가 많습니다.
 
몽생미셸 수도원 성당(좌)과 중세 몽생미셸 모습(우). 첨탑 위 성 미카엘 천사상은 4.5m, 400kg으로 1897년 네오고딕 양식의 첨탑과 함께 설치됐다. 3층으로 된 복합 건축물 중 맨 위층이 성당이다. 15세기 초 「베리 공작의 매우 호화로운 시간 기도서」의 세밀화를 보면 성당 정면에 두 개의 탑이 있었지만 18세기 말 균열로 철거했다.

알프스 이북의 성 미카엘 대천사 성지

몽생미셸은 대천사 ‘성 미카엘의 산(Mont-Saint-Michel)’이란 뜻입니다. 섬에는 1200년 넘게 신앙과 영적 탐구의 등대였던 수도원이 있습니다. 알프스 이북에 복음이 퍼지던 시기였던 708년 성 미카엘 대천사가 아브랑슈의 오베르 주교의 꿈에 세 차례나 나타나 당시 ‘몽통브’라고 불리던 바위섬에 자신에게 봉헌된 성지를 세우라고 요구합니다. 주교가 주저하자, 세 번째 꿈에서는 주교의 이마를 눌러 자국을 남겼다고 하죠. 이에 놀란 주교는 섬 꼭대기 바위 위에 ‘노트르담수테르’ 성당을 세워 12명의 의전 사제단을 뒀는데, 이것이 몽생미셸의 시작입니다. 마치 서방에 그리스도교가 막 퍼지던 492년 몬테산탄젤로 수도원 설립이 연상됩니다.

전통적으로 대천사 성 미카엘은 인간과 교회를 지키며 죽을 때 영혼을 보호하고 천국으로 인도하는 수호천사로 여깁니다. 이런 신심은 동방 교회에서 시작되어 5세기 무렵에는 서방에도 퍼졌고 알프스 이북까지 퍼진 겁니다. 이런 배경에 몽생미셸은 중세 서유럽에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예루살렘, 로마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순례지로 발전합니다.

무엇보다 몽생미셸은 백년전쟁 중 잉글랜드에 끝까지 함락되지 않아 승리의 상징으로 여깁니다. 사람들은 이를 성 미카엘 대천사의 도움이라 여겨 대천사를 프랑스의 수호성인으로 공경하고 이곳을 순례했습니다. 순례자 중에는 잉글랜드와 프랑스 왕들도 있었지요. 중세에 몽생미셸을 순례한 이들은 산티아고의 조가비처럼 성 미카엘 배지나 패치를 옷에 달고 다녔습니다. 성 미카엘 대천사의 보호 아래 있다는 상징이었지요.
 
수도원 본당(좌)과 옛 수도원 식당(우). 현재는 예루살렘 수도형제회(FMJ)가 순례자 사목을 맡고 있다. 식당은 10m×30m 크기로 동쪽 벽의 큰 창 두 개만 보이지만, 사실 50개가 넘는 창이 측벽 아케이드 안에 숨겨져 있다. 음향이 좋아 콘서트 장소로도 쓴다.
 
수도원 창설을 나타낸 부조. 9세기 오귀스트 바레의 작품으로 미카엘 대천사가 잠자는 오베르 주교의 이마를 향해 오른손을 뻗고 있다. 오베르 주교도 성인품에 올랐다.

베네딕도회 수도자들이 일군 기적의 수도원 단지

966년부터 의전 사제단 대신 베네딕도회 수도자들이 몽생미셸에 정주하면서 황금기가 시작됩니다. 고전을 번역하고 설교집과 주석서를 필사·제작하는 등 노르망디 문화의 중심지로 발돋움하지요. 그 무렵 몽생미셸을 제외하면 주변은 이교도 지역이어서 노르망디 공작들은 몽생미셸 수도원을 후원하면서 자신이 그리스도교의 수호자임을 드러내고자 했습니다. 이들 후원으로 1023년 수도원 공사가 시작되어 61년 후 로마네스크 양식의 성당과 수도원이 완공됩니다.

수도원이 브르타뉴와 노르망디지방에 접한 해안에서 약 1㎞ 떨어진 만(灣)의 중심부에 있어서 전략적으로 중요한 요새 역할도 했습니다. 그 때문에 13세기 초 전쟁으로 수도원과 마을이 잿더미가 됐는데, 이 사건은 수도원을 확장하고 천혜의 요새로 탈바꿈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전쟁을 일으켰던 프랑스 국왕 필리프 오귀스트가 2만 리브르를 보내 피해를 복구하도록 했는데, 지금 가치로는 수백억 원에 달합니다. 이 돈으로 방어벽을 더욱 튼튼히 하고, 1211~1228년 높이 40m, 3층으로 된 기적 같은 건물을 지었습니다. 맨 위가 성당과 성당 마당이고, 그 아래 암반 주변으로 서쪽 수도원 구역과 북쪽 귀족과 기사들이 머물던 공간, 사무 공간, 더 아래층에는 순례자들 숙소와 사제관인 복합 단지가 탄생했죠.

그 덕분에 백년전쟁 중 무사할 수 있었습니다만, 프랑스 혁명으로 수도원은 폐쇄되고 ‘바다의 바스티유’가 되어버렸습니다. 섬 입구만 차단하면 감옥으로 최적이었으니까요. 1863년 감옥은 폐쇄됐지만, 수도원은 황폐 그 자체였습니다. 19세기 말 역사적 유산에 대한 의식이 일면서 수도원도 복원되고 방문객들도 늘기 시작했습니다.
 
몽생미셸 생피에르 성당(좌)과 성당 주제대의 성 미카엘 대천사상(우). 8세기 섬 동쪽에 건립된 성당으로 현재 몽생미셸 본당이다. 성당의 후진 아래가 아치 형태로 된 마을 길 통로로 되어 있다

천국으로 가는 길

지금은 내륙의 주차장에서 셔틀버스를 타고 섬으로 들어갑니다만, 과거 순례자들은 썰물에 맨발로 넓은 모래톱을 걸었습니다. 조수 간만의 차가 큰 갯벌을 건넌다는 건 모험이었지요. 섬 입구에서 수도원까지도 수많은 계단과 오르막이 있어서 꽤 힘든 길입니다. 하지만 순례자에게는 한 걸음 한 걸음이 하느님께 다가가는 길처럼 느껴졌을 겁니다.

수도원 성당 첨탑의 황금빛 성 미카엘 대천사상이 눈에 먼저 들어옵니다. 용을 발로 밟고 하늘로 날아오는 전사의 모습이 신자들에게 항상 빛의 편에 서서 어둠과 싸우자고 이야기하는 듯합니다. 마을의 성 피에르 성당에도 은빛 대천사상이 있습니다. 원래 수도원 성당 제대에 세워져 있었다가 19세기 후반 관광객을 피해 마을 본당으로 옮겼습니다. 수도원의 대천사상은 이곳이 천국으로 가는 곳임을 알린다면, 마을의 대천사상은 지상에서 끊임없이 악과 싸우는 교회의 투쟁을 상징하는 듯합니다.

성당 안은 빛으로 환합니다. 제단 주변의 가대석은 스테인드글라스가 햇빛을 받아 빛의 향연이 펼쳐집니다. 곳곳에서 순례자들의 ‘성 미카엘 대천사 기도’나 노래가 들립니다. 지하 소성당의 거친 돌벽에 새겨진 천사의 모습 앞에 서면 1000년 넘게 내려온 신앙이 전해지는 것 같습니다. 세상에 짓눌리지 않고 내 안의 빛을 찾아가도록 도와주시길 기도합니다.

“성 미카엘 대천사여, 우리를 지켜 주소서!”

 

<순례 팁>

※ 파리에서 기차+버스로 4시간 30분 소요. 렌과 생말로에서 몽생미셸까지 버스 노선이 있다. 내륙주차장에서 수도원까지 도보로 약 1시간 소요(무료 셔틀 : 주차장↔섬). 수도원 입장료 13유로(국가가 운영), 한국어 안내 태블릿 5유로.

※ 도보/자전거 순례자는 수도원에 사전 신청하면 1박 가능.(순례자 증명서 필수)

※ 몽생미셸 수도원 성당 미사 11:00(매일), 생 피에르 성당 성체조배 20:30(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