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교회 마드리드대교구 주교좌 알무데나 성모 대성당에 있는 마리아 요세파 성녀의 성상. 출처=위키피디아
예수 성심의 마리아 요세파 성녀는 1842년 9월 7일 스페인 북부 비토리아에서 의자를 만드는 아버지 베르나베 산초와 어머니 페트라 데 게라 사이 맏딸로 태어났습니다. 유아기와 어린 시절부터 마리아 요세파는 성체성사와 성모 마리아께 대한 깊은 신심, 가난하고 병든 이들에 대한 놀라운 감수성, 고독을 음미하는 독특한 성격을 갖고 있었습니다.
마리아 요세파는 1860년 마드리드의 아랑후에스에 있는 무염시태 관상 수도원에 들어가려 했으나, 치명적인 발진티푸스에 걸려 뜻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어머니의 도움으로 좌절감을 극복한 마리아 요세파는 자신의 성소가 활동 수도회에 있다고 여기고 마드리드에 설립된 성모의 종 수녀회에 입회하기로 합니다. 서원을 앞둔 마리아 요세파는 극심한 회의와 함께 수녀원 안에서 자신의 성소에 대해 의심하기도 했습니다. 마리아 요세파는 결국 여러 고해 사제에게 마음을 열고 대화하며 그들의 조언을 통해 자신의 성소를 잘못 판단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마리아 요세파는 성 안토니오 마리아 클라렛 대주교와의 만남과 마리아 솔레다드 토레스 아코스타 성녀와의 진지한 대화를 통해 차츰 성모의 종 수녀회를 떠나 새로운 수도회를 설립하는 쪽으로 마음을 굳혔습니다. 그가 설립하고자 하는 새 수도회의 목적은 병원과 가정에서 환자들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었습니다. 마리아 요세파와 뜻을 같이하는 세 명의 성모의 종 수녀회 동료들이 톨레도 대주교의 허락을 받고 그와 함께 수녀원을 나왔습니다.
새 수도회 설립은 마리아 요세파가 29살이 되던 1871년 봄 빌바오에서 이뤄졌습니다. 설립 이후 41년 동안 그는 자신이 설립한 ‘사랑의 예수의 종 수녀회’ 원장을 맡았습니다. 오랜 병고로 어려운 상황에서도 여러 공동체를 방문하는 여정을 계속해나갔습니다. 어쩔 수 없이 침대나 안락의자에 기대며 지내는 상황에서도 스페인 안팎의 여러 공동체와 서신을 주고받으며 수도회 일들을 처리했습니다. 1912년 3월 20일 마리아 요세파가 선종했을 때는 이미 43개 수녀원이 설립되어 1000명 넘는 수녀들이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마리아 요세파의 거룩한 죽음은 빌바오뿐만 아니라 그가 설립한 수녀회를 통해 그를 알게 된 다른 많은 지역에까지 큰 영향을 줬습니다. 그의 장례식 또한 반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마리아 요세파의 시신은 빌바오의 공동묘지에 묻혔으나, 1926년 그의 성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수녀원 본원으로 유해를 옮겨 경당 안에 안치해 오늘에 이릅니다. 그는 1992년 9월 27일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에 의해 시복되었고, 2000년 10월 1일 바티칸의 성 베드로 광장에서 성인품에 올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