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신앙] (21)세균과 인간 (전성호 베르나르도, 경기 효명고 과학교사)

(가톨릭평화신문)


1999년 프랑스 신문사 르 몽드가 선정한 ‘세기의 도서 100권’ 목록에는 영국 작가 H.G.웰스가 1898년 집필한 공상과학 소설(SF) 「우주전쟁」이 있다. 웰스는 「타임머신」 「투명인간」 같은 유명한 SF 소설을 남겼으며, 그의 과학적 식견과 인류 문명의 지향점에 대한 깊은 고민은 오늘날에도 많은 교훈을 준다.

「우주전쟁」은 지구 문명보다 앞선 화성인들이 지구를 침공한 이야기다. 화성인들의 무자비한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인간들의 무기력한 모습이 나온다. 인간만이 유일한 지적 존재라는 오만함을 꼬집고 당시 제국주의 영국의 잔악한 식민 지배를 고발한 이 작품은 여러 번 영화나 TV 시리즈로 제작됐다. 소설은 지구의 세균에 면역력이 없는 화성인들이 세균 감염으로 자멸한다는, 조금은 허무한 엔딩으로 마무리된다.

소설이 쓰인 1890년대는 프랑스의 파스퇴르가 탄저균을, 독일의 코흐가 결핵균과 콜레라균을 발견해 질병의 원인인 세균연구에 새로운 획을 긋는 시기였다. 세균(細菌, bacteria)의 크기는 0.5㎛(마이크로미터)부터 0.5㎜ 정도로 매우 작아 맨눈으로는 볼 수 없다. 세균은 중세 유럽 인구의 30~50%를 죽음에 이르게 한 페스트균이나 폐렴균처럼 질병을 일으키는 종류부터 유산균처럼 인간에게 이롭거나 인체에서 공생하는 비병원성 대장균 등 그 종류가 매우 다양하다.

이 세균들도 각자 생존 방식에 따라 살아가는 하느님의 또 다른 창조물이다. 세균은 보이지 않을 뿐 생물의 몸, 공기, 물, 휴대폰 표면 같은 사물 등 세상 어느 곳에나 존재한다. 질병을 일으키는 병원성 세균에 대처하는 방법이 없던 시절에는 단순한 세균감염이 치명적 합병증을 유발해 사망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1928년 영국의 플레밍이 푸른 곰팡이가 세균 증식을 억제하는 것을 우연히 발견한 이후 인간은 항생제를 개발해 세균을 정복하기 시작한다. 항생제 사용은 제2차 세계대전 때 많은 군인의 생명을 살리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그러나 인간만이 다른 생물보다 우월하다는 생각을 비웃듯 세균은 항생제 내성 유전자 변이를 통해 진화하여 살아남아 지금은 어떤 항생제에도 견디는 슈퍼박테리아가 출현했다.

과학자들은 46억 년 지구 역사에서 원시적인 세균의 출현을 38억 년 전으로 추정한다. 인류가 지구에 등장하기 수십억 년 전부터 열악한 원시 지구 환경에 적응한 세균은 다른 생명체들과 함께 지구 생태계를 이루고 있다. 알베르 카뮈는 그의 소설 「페스트」에서 “내가 확실하게 알고 있는 것은 사람은 저마다 자신 속에 페스트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 병균은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했다. 인간은 좋든 싫든 세균과 공존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문학적 표현이다.

세균이나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호흡기에 염증이 발생하는 대표적 질환이 폐렴인데 증상이 심할 경우 호흡부전과 사망에 이르게 된다. 폐렴은 60대 이상에서는 치사율이 30% 정도이며, 80대 이상에서는 50%나 된다. 현재 88세로 고령인 프란치스코 교황이 양쪽 폐에 폐렴 진단을 받고 아직도 병원에서 치료 중이다. 전 세계 신자들이 마음을 모아 교황의 쾌유를 기도하고 있는 지금, 프란치스코 교황이 부디 세균과의 힘든 싸움을 이겨낼 수 있도록 하느님께 청해본다.

전성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