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피어나는 곳에] 인신매매로 강제 노동하다 구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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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파엘 피아뜨 임만택 회장이 유추생씨를 찾아 위안을 건네고 있다.


대장암 진단 받았지만 병원비 걱정

“이거 보세요!” 유추생(요셉, 69)씨가 목에 건 예수님 이콘을 들어 보였다. 대장암으로 1차 항암치료를 겨우 마친 그는 최근 대세를 받고 나서 부쩍 웃음이 많아졌다. 암은 이미 간과 폐까지 전이된 상태이고 종양도 큰 편이다. 4차 항암 치료까지 받고 종양 크기가 조금 줄면 수술을 받기로 했다.

오랜 기간 노숙을 하던 그의 얼굴에는, 사실 웃음보다는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대만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호적에 부친의 이름만 등록되어 평생을 한국 땅에서 이방인으로 살아왔다. 어린 시절 집을 나간 어머니에 대한 기억은 거의 없다. 아버지는 유씨와 한국에 남아 중식당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요리사로 일했다. 유씨의 유년 시절 풍경은 식당과 옆에 딸린 방 한 칸이 전부다. 아버지를 따라 식당 문을 여는 아침 9시부터 손님들의 심부름을 하며 담배나 술을 사오고, 음식을 나르고 식탁을 치웠다. 학교는 다니지 못했다. 한글을 배울 기회가 없어 이름 석자도 읽고 쓸 줄 모른다.

고된 삶의 무게가 버거웠던 걸까. 아버지는 걸핏하면 국자로 유씨를 심하게 때렸다. 26살이 되어서야 무작정 식당을 뛰쳐나와 기차를 타고 서울로 향했는데, 미등록 외국인 신분으로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유씨는 결국 목포·광주·여수·부산을 떠돌았다.

어느 날 목포역에 쭈그리고 앉아있던 유씨에게 누군가 다가왔다. 그는 자신을 따라오면 숙식도 해결하고 돈도 많이 벌 수 있다고 했다. 그렇게 유씨는 인신매매를 당해 새우잡이 배를 탔다. 배에서 내리면 다시 어느 섬의 인신매매 사무실에 갇혔다. 염전에서도 일했다. 그곳을 탈출하려면 육지까지 헤엄을 쳐야 했다.

유씨는 “그렇게 죽은 동료들이 참 많았다”고 회상했다. 수사에 나선 경찰들의 도움으로 겨우 화물차를 타고 고향인 대구로 돌아왔다. 노동 대가는 한 푼도 받지 못했다. 이 모든 기억이 깊은 고통으로 남아 극단적인 시도도 여러 번 했다. 그때마다 시민의 구조로 목숨을 건졌다.

유 씨가 병을 발견하게 된 건, 무료 급식소 ‘프란치스꼬의 집’의 신부 덕분이었다. 사제는 유씨가 머물 곳을 찾아 살 수 있도록 했지만, 하루에 15번 이상 화장실을 찾는 것을 보고 이상하게 여겼다. 병원에 가보니 암이 퍼질 대로 퍼진 상태였다.

국립중앙의료원에서는 유씨가 일용직으로 일할 때 얻은 영주권과 들어놓은 건강보험을 통해 치료와 치료비를 지원했다. 그러나 앞으로가 문제다. 유씨는 다시 한 번 삶이 주어진다면 봉사하며 살고 싶다는 의지를 전했다. “저는 욕심이 없는 사람입니다.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저도 또 다른 이웃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뭐든 하고 싶어요.”

박예슬 기자 okkcc8@cpbc.co.kr

 


후견인: 백준호 신부 작은형제회

“불우한 가정환경에서 자라 교육 한 번 받지 못한 채 살아온 유추생씨의 삶이 매우 안타깝습니다. 건강이 크게 나빠진 것도 오랜 빈곤과 노숙이 원인이라 여겨집니다. 어쩌면 인생에서 마지막으로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기회일지도 모를 그에게 교회의 온정이 전해지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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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추생씨에게 도움을 주실 독자는 27일부터 5월 3일까지 송금해 주셔야 합니다. 이전에 소개된 이웃에게 도움 주실 분은 ‘사랑이 피어나는 곳에’ 담당자(02-2270-2503)에게 문의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