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편 교회는 현재 ‘사도좌 공석’(Sede vacante) 상태다. 가톨릭교회에 사도좌, 곧 교황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을 뜻한다. 새 교황을 선출할 때까지 누구도 사도좌를 대행할 수 없다. 사도좌 공석은 새 교황이 선출되면 즉시 해소된다.
‘교황’(Pope)은 ‘그리스도의 지상 대리자’이며 ‘보편 교회의 목자’이자 ‘주교단의 으뜸’이다. 사도들 중 첫째 베드로의 후계자인 로마 교회의 주교 교황이 선종(사망)하거나 사임해 그 자리가 빈 상태를 ‘사도좌 공석’이라 한다. 사도좌 문장도 교황 삼층관 대신 우산(Umbraculum)으로 바뀐다. 교황청 홈페이지는 프란치스코 교황 선종 직후 기존 교황 문장과 얼굴 사진을 우산으로 교체했다.
사도좌가 공석이 되면 교회 통치권은 교황의 성실한 협력자들인 추기경단에 위임된다. 그러나 통상적 업무와 연기할 수 없는 특별한 업무들, 새 교황 선출에 필요한 준비에 국한된다. 교황만이 할 수 있는 보편 교회 통치권은 누구도 대행할 수 없다.
이 시기 교황이 생전 임명한 거룩한 로마교회 궁무처장 추기경은 교회 운영 전반을 담당하는 조정자 역할을 한다. 새 교황 선출 전까지 필요한 모든 사항을 준비·해결하는 것이다. 국무원 총리와 각 부서 장관을 비롯한 교황청 모든 기관장과 위원의 임무는 즉시 중단된다. 선종한 교황을 애도하고, 이어 보편 교회를 새롭게 이끌 새 베드로의 후계자를 선출하는 막중한 임무를 함께 수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교황선거, ‘콘클라베’(Conclave)다.
4월 26일 전 세계인이 추모하는 가운데 프란치스코 교황이 장례미사 후 영면에 든 이후 가톨릭교회는 제267대 교황을 뽑는 ‘콘클라베’ 절차에 돌입한다. 콘클라베는 교회법에 따라 사도좌가 공석이 된 후 15~20일 이내에 열려야 하는데, 이에 교황청은 4월 28일 추기경단 회의를 통해 5월 7일 콘클라베를 시작한다고 밝혔다.
콘클라베는 교황을 선출하는 가톨릭교회만의 특별한 비밀회의다. 라틴어 ‘쿰’(Cum, 함께)과 ‘클라비’(Clavis, 열쇠)의 합성어로, ‘열쇠로 잠근 방’이란 뜻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베드로의 후계자를 뽑는 방법을 정해주지 않으셨다. 그래서 초기에는 신자와 성직자들이 교황을 직접 선출하기도 했다. 지금처럼 추기경단에 위임된 것은 1059년 니콜라오 2세 교황 때부터다. 이후 1274년 그레고리오 10세 교황이 ‘교황 선출 전까지 누구도 방에서 나오지 못한다’는 칙서를 반포했다. 이때부터 지금의 ‘콘클라베’와 유사한 형태를 갖추게 됐다.
현재 교황 선출 방식은 1996년 2월 22일 성 요한 바오로 2세가 공표한 교황령 주님의 양떼(Universi Dominici Gregis)에 따른다. 이 교령은 현재 사도좌 공석과 콘클라베 절차를 규율하는 기본법으로, 그동안의 관습을 정리하고 시대에 맞게 수정했다. 교황령은 총 92개 조항으로 △사도좌 공석 기간 중의 교회 통치 △추기경 및 관련자들의 역할과 의무 △선거 전 준비 절차 △선거 절차 자체 △비밀 유지 의무 강조 △비밀 투표 방식만 인정 등이 규정돼 있다.
제37조에는 ‘사도좌 공석이 시작된 후 15일이 지나고 20일이 되기 전에 콘클라베를 시작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하지만 이 규정은 베네딕토 16세 교황이 발표한 자의교서를 통해 ‘모든 선거인 추기경이 로마에 도착했을 경우, 추기경단이 15일이 되기 전에 콘클라베를 시작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는 내용으로 개정됐다. 이는 의무가 아닌 선택 사항이다.
개정된 규정은 2013년 2월 베네딕토 16세 교황 사임 후 실제 적용됐다. 당시 추기경단은 사도좌 공석이 시작된 뒤 12일 만인 3월 12일 콘클라베를 시작했고, 13일까지 5차례 투표 끝에 ‘호르헤 마리오 베르골료’ 추기경을 제266대 교황으로 선출됐다.
이번에도 선거권 유무와 관계없이 모든 추기경이 추기경단 회의를 열어 교황의 장례 일정 확정, 콘클라베 시작일 결정, 주요 행정 문제 처리 등을 논의했다. 사도좌 공석 15~20일 사이에 콘클라베가 개최되는 원칙에 따라 이번 제267대 교황을 뽑는 콘클라베 시작일을 5월 7일로 결정하게 됐다. 프란치스코 교황을 위한 9일간의 추모기간인 ‘노벤디알리’(Novendiali)는 5월 4일까지 이어진다.
콘클라베는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전 옆 시스티나 성당에서 열린다. 투표에 참여하는 80세 미만 추기경들은 콘클라베 기간 바티칸 내 숙소인 산타 마르타의 집에 머문다. 추기경들은 바티칸 외부로 나갈 수 없으며, TV나 라디오·신문도 접할 수 없다. 외부인과의 전화통화도 불가하다.
매일 오전·오후 각 두 차례씩, 하루 최대 네 차례 투표가 열린다. 투표 중간중간에는 후보자들에 관해 논의하는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투표에 참여하는 모든 추기경이 전원 후보이자 유권자에 해당하기에 일반 사회의 선거처럼 공약 발표나 선거운동 같은 절차는 없다. 올초 국내에도 개봉한 영화 ‘콘클라베’ 등 작품들에 일반인들이 볼 수 없는 콘클라베 과정이 생생히 등장하지만, 추기경들 간의 물밑 암투는 그야말로 영화적 해석이다.
콘클라베의 핵심은 성령의 이끄심을 통해 이뤄진다는 점이다. 콘클라베는 교황의 협조자들이자 각 대륙과 지역 교회를 대표하는 다양하면서도 일치된 뜻으로 형제애를 갖춘 추기경들이 기도와 묵상·대화를 통해 보편 교회를 이끌 새 목자를 뽑는 과정이다. 대신 이들은 교회가 직면한 상황, 현 시대가 요구하는 사안을 종합적으로 바라보고 기도하며 지혜를 모을 뿐이다. 콘클라베의 모든 과정은 추기경의 기도를 통한 성령의 이끄심을 통해 이뤄진다. 콘클라베에 임하러 첫째 날 추기경단이 시스티나 성당으로 행렬하는 동안 성가 ‘오소서, 성령님’(Veni Creator)을 부르는 것도 이러한 의미에서다. 선거인 총 수의 3분의 2 이상 득표하는 추기경이 새 교황이 된다.
콘클라베 기간 전 세계인의 이목은 가장 작은 나라이지만 가장 영향력 있는 지도자를 뽑는 바티칸으로 쏠린다. 전 세계 14억 명 가톨릭 신자들의 영적 아버지가 될 가톨릭교회 수장을 뽑는 특별한 날이면서 동시에 투표 결과가 시스티나 성당 굴뚝으로 공표되는 독특한 방식으로 선보여서다. 흰 연기가 나오면 새 교황 선출에 성공한 것이고, 검은 연기는 재투표를 의미한다. 투표가 끝날 때마다 개표된 용지를 화로에 넣어 태우는데, 연기의 색을 명확히 하기 위해 특수 염료를 첨가한다. 지난 100년간 열린 7차례의 콘클라베는 모두 나흘 안에 교황이 선출됐다. 최근 선출된 성 요한 바오로 2세·베네딕토 16세·프란치스코 교황은 모두 이틀 만에 선출됐다.
콘클라베를 통해 최종 만장일치(3분의 2 이상)의 득표를 얻은 추기경은 교황직을 수락하고, 즉위 후 사용할 교황명을 정하게 된다. 교황의 직무를 수락하는 즉시 교황이 되며, 임시로 마련된 흰색의 교황 수단으로 갈아입게 된다. 추기경들은 새 교황에게 경의를 표하고 순명을 약속한다.
이후 추기경단 가운데 첫째(최선임) 부제(급) 추기경이 성 베드로 대성전 중앙 발코니에서 “Habemus Papam”(하베무스 파팜, 우리에게 새 교황이 탄생하셨다는 뜻의 라틴어)을 선언하며 교황 선출을 공식 선포한다. 전 세계에 생중계되며, 광장에 모인 전 세계인들 앞에서 새 교황명이 처음 발표된다. 교황은 짧은 연설을 한 뒤 ‘Urbi et Orbi’(로마와 온 세상에) 사도좌 축복 메시지를 전하고 공식 사도좌 직무에 돌입하게 된다.
콘클라베의 교황 투표권을 지닌 80세 미만 추기경 정족수는 교회법상 120명으로 제한된다. 하지만 현재 이에 해당하는 추기경은 135명에 이른다. 기존 교회법을 따를지는 추기경단이 회의를 통해 정립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콘클라베에 참여하는 추기경 중 유일한 한국인은 교황청 성직자부 장관 유흥식 추기경(73)으로, 고 김수환 추기경 이후 콘클라베에 참여하는 두 번째 한국인 추기경이 됐다. 김 추기경은 1978년 8월 제262대 바오로 6세 교황 선종 이후와 10월 제263대 요한 바오로 1세 교황 선종 이후 열린 2차례 콘클라베에 참여했다. 2006년 서임된 정진석 추기경은 2013년 베네딕토 16세 교황 사임 당시 81세였고, 염수정 추기경은 한 해 뒤인 2014년 추기경에 서임돼 콘클라베에 참여하지 못했다.
이상도 선임기자 raelly1@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