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8월 16일 꽃동네 희망의 집을 방문한 프란치스코 교황이 장애 어린이에게 안수하며 축복하고 있다. 가톨릭평화신문 DB
10여 년이 흘렀지만 어떤 기억은 더 또렷해진다. 2014년 초 갑자기 결정된 프란치스코 교황님 한국 순방은 내 기억 속에 동영상처럼 남아있다. 교황님은 한 인터뷰에서 “한국 순방을 앞두고 계시는데, 한국에 대한 이야기를 어디서 듣고 계신가요?”라는 기자의 질문을 받았다. 교황님은 “주한 교황대사관, 잘 아는 지인 몇 명, 그리고 서울대교구”라고 밝히셨다. 서울대교구 홍보국을 지칭한 것이었다.
전례와 홍보팀은 로마에 가서 브리핑을 받아야 했다. 4월 로마 방문 때 교황님의 해외순방 총책임자인 알베르토 가스바리 박사가 나에게 자신의 휴대전화 번호와 이메일을 주면서 자주 의견을 주고받자고 제안하셨다. 그때부터 로마와 서울 간에, 그리고 교황님 한국 순방 중에도 중요한 점들에 대해 소통을 이어갔다. 가스바리 박사는 로마에서 아주 사소한 문제나 민감한 사안들도 질문하고 의견을 구했다. 그동안 수십 통의 이메일을 주고받고 전화통화는 더 많이 했을 것 같다. 그러면서 자연히 서로의 신뢰가 높아졌다.
한 가지 에피소드는 교황님이 꽃동네 장애인들이 사는 방을 방문했을 때 신발을 벗어야 하느냐가 문제가 된 적 있다. 교황님 한국 순방은 분 단위로 나뉘어 모든 사항이 점검 중이었다. 교황님 측에서 꽃동네에서는 신발을 벗으시겠다고 애초에 말씀하셨다.
그런데 일부 신부님들이 외국 정서상 신발을 벗는 것은 맞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렇다고 신발을 신고 들어갈 수도, 신발에 덧신을 신기도 이상한 상황이었다. 자세한 이야기를 가스바리 박사에게 전했더니 다음날 바로 “그 상황에 맞게 교황님이 선택하셔서 행동하실 것”이라는 답이 왔다. 실제 꽃동네를 방문한 날 메인 프레스센터에서 화면으로 보니 교황님이 의자에 앉아 신발을 벗고 계셨다.
교황님이 방문하신 첫날 엠바고 때문에 청와대에서의 첫 연설문을 행사 2시간 전에 받게 됐는데, 단어 하나를 고쳐야 했다. 염수정 추기경님께도 보고하니 빨리 조처하라고 하셨다. 언론에 공식 배포하기 전에 수정해야 하는데 시간이 없었다. 여러 기관에 전화했는데 연설문을 이미 다 넘긴 상태로 수정이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단 한가지 방법은 교황님께 직접 허락을 받는 것이었다. 가스바리 박사는 교황님과 교황청 대변인 롬바르디아 신부님과 긴급회의를 했다며 우리에게 일임하기로 했다고 알려왔다. 교황님이 웃으며 “우리보다 그분들이 한국어는 더 잘 알잖아” 하셨다는 것이다.
미사 후 교황님은 제의실로 홍보국 직원들을 부르셨다. “그동안 수고가 많았다”면서 한 명 한 명 안아주셨다. 인간적인 따뜻함과 배려, 여유와 유머가 많으신 교황님이 오래 기억될 것 같다.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영성심리상담원 원장·2014년 교황 방한 당시 서울대교구 홍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