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이 어우러진 색채의 향연, 샤갈의 세계 속으로

(가톨릭평화신문)
 
‘마르크 샤갈 특별전’ 전경


탈출기 등 성경 연작 눈길 사로잡아
스테인드글라스 미디어아트로 구현
원화 7점 첫 공개… 170여 점 한자리



‘색채의 마술사’로 불리는 샤갈의 작품 170여 점이 한자리에 모였다.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개막한 ‘마르크 샤갈 특별전: BEYOND TIME(비욘드 타임)’. 샤갈 서거 40주년을 기념해 열린 이번 전시에서는 전 세계에서 최초로 공개되는 원화 7점을 포함해 회화·드로잉·석판화·유화·미디어아트 등 다양한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마르크 샤갈(Marc Chagall, 1887-1985)은 러시아 비텝스크(지금의 벨라루스)에서 태어나 러시아혁명과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겪으며 파리·베를린·뉴욕·예루살렘 등을 오가면서 국경과 언어·시대를 초월한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구축했다.

예술의전당 큐레이터 장윤진 과장은 “샤갈은 자전적 이야기를 바탕으로 작품에 가족·유다인·인류에 대한 사랑을 표현했고, 98년이라는 긴 생애 동안 굴곡진 세상사를 겪었지만 시대사조를 뛰어넘어 자신만의 독특한 작품세계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전시장에는 유년기 추억이 어린 러시아정교회 성당의 독특한 돔들이 어우러진 비텝스크와 유다인 공동체 마을, 생의 후반기를 중심으로 50년가량을 머문 프랑스의 파리와 니스 등 지중해의 다채로운 모습, 강렬한 존재감으로 일상의 덧없음과 삶의 연약함을 반영하는 꽃다발 작품 등이 걸려 있다. 국내에서 몇 차례 열렸던 샤갈전과 비교해 작가 특유의 강렬한 색채와 몽환적인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다.

신앙인들의 눈길을 더욱 사로잡는 건 샤갈이 작업한 ‘성경’ 연작이다. 1923년 파리에서 샤갈은 저명한 미술상이자 출판인인 앙브루아즈 볼라르로부터 고골의 「죽은 혼」과 라퐁텐의 「우화」, 「성경」 같은 작품의 삽화를 의뢰받아 뛰어난 판화 기법을 선보였다. 샤갈은 특히 성경의 땅을 직접 보고자 1931년 팔레스타인으로 향했고, 그곳에서 “빛과 땅, 그리고 물질을 동시에 발견했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골리앗을 이긴 다윗’ ‘홍해를 건넌 사람들’ 등으로 이어지는 성경 연작은 1931년부터 1939년 볼라르가 사망할 때까지 이어졌고, 전쟁과 망명의 시기를 지나 1952년 다시 시작해 1956년 완성했다. 샤갈은 “어릴 적부터 성경에 마음을 빼앗겼고, 성경은 언제나 그리고 지금도 인류가 가진 가장 위대한 시의 원천처럼 느껴진다”며 “성경은 ‘자연의 울림’과 같고, 나는 그 비밀을 그림 속에 담아 전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전시장에는 「탈출기 이야기」도 소개되고 있다. 진열된 석판화 연작은 1966년 출판인 레옹 아미엘에 의해 출간됐다. 모세가 십계명을 받는 이야기, 백성들의 고통을 목격하는 모습 등이 담겨 있다. 구약성경의 탈출기는 억압에서 벗어나 약속의 땅을 향해 나아가는 여정을 그리고 있지만, 혁명과 전쟁으로 여러 차례 삶의 터전을 옮겨야 했던 샤갈은 한 시대의 종교적인 사건뿐 아니라 자유를 향한 인간의 보편적인 갈망을 표현했다.

 
파리 위의 신부

‘탈출기’ 혹은 ‘탈출기의 배’, 1948.


 

탈출기 이야기.


 
샤갈이 작업한 예루살렘 하다사 의료센터 내 회당의 스테인드글라스를 몰입형 미디어 아트로 구현, 관람객들이 체험하고 있다.



특히 1948년경 제작된 ‘탈출기’ 혹은 ‘탈출기의 배’는 제2차 세계대전 중 유다인들이 겪은 고통과 추방의 현실,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난민들의 집단 이주 등을 생각하게 한다. 노란빛으로 떠오른 십자가 위의 인물은 그리스도의 수난과 유다인의 고통을 상징하고 그림 전체적으로는 절망과 상실·어둠이 느껴지지만, 화폭 왼쪽 위에서 스며드는 희미한 백색의 빛은 꺼지지 않는 희망을 내포한다.

장윤진 큐레이터는 “종교적인 환경에서 자란 샤갈은 망명과 전쟁 등을 거치며 종교에 많이 의지했던 작가이며, 성경 연작은 그가 평생을 바쳐 만들어낸 거대한 예술적 여정의 하나라고 말할 수 있다”고 전했다. 특히 “샤갈은 익히 알고 있는 성경의 이야기를 단순히 묘사하는 데 그치지 않고 희망이나 믿음·사랑·희생처럼 우리 삶 속의 이야기를 같이 녹여냈다는 것에 그 의미가 있다”고 분석했다.

그런가 하면 샤갈은 1958년 프랑스 랭스대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 작업 후 1959~1961년 이스라엘 예루살렘의 하다사 의료센터 내 회당에 설치한 12개의 스테인드글라스도 제작했다. 각 창은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주제로 삼고 있으며, 성경 말씀에 바탕을 두고 색과 상징·시적 은유를 결합해 섬세하게 배치했다. 빛에 따라 색감과 깊이를 달리하는 스테인드글라스는 샤갈의 걸작 중 하나로, 이번 전시에서는 하다사 의료센터 스테인드글라스의 밑그림뿐만 아니라 미디어아트로 실물 크기의 스테인드글라스를 구현해 현장을 간접 체험할 수 있도록 꾸몄다.

파리 오페라하우스(오페라 가르니에)의 천장화도 몰입형 미디어아트로 연출했다. ‘꿈의 꽃다발’로 불리는 이 천장화는 샤갈이 1964년 당시 프랑스 문화부 장관의 요청으로 제작했다. 220㎡에 달하는 오페라하우스 천장에 샤갈은 글루크·베토벤·베르디·비제·아당·차이콥스키·스트라빈스키·라벨·드뷔시·라모·베를리오즈·바그너·모차르트·무소륵스키 등 자신이 사랑한 음악가 14명의 작품세계를 펼쳐 보였다.

‘마르크 샤갈 특별전: 비욘드 타임’ 전은 9월 21일까지 이어진다.

윤하정 기자 monica@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