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의 실패는 실패가 아니었다
(가톨릭평화신문)
나는 경기도 성남 분당의 서현고등학교 레슬링부에서 운동했다. 유도에서 레슬링으로 전향한 후 3개월 만에 전국대회 3위에 입상했다. 유도를 할 때는 성적이 좋지 않았는데, 레슬링에서는 나는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그만큼 레슬링이 적성에 맞 았다. 한 체급에서만 우승한 것이 아니다. 4 2kg, 4 6kg, 50kg, 54kg급으로 4체급 올리면서 모두 석권했다.
내가 그렇게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었던 것은 모두 김수영 당시 서현고등학교 감독님 덕분이었다. 김수영 감독님이 아니었다면 지금의 나도 없었을 것이다. 감독님은 헌신적이었다. 제자들에 대한 사랑도 남달랐다. 지금도 늘 자주 찾아뵙고 가족처럼 지내고 있다.
특별히 김수영 선생님의 은혜 중 하나를 꼽으라면, 부산 아시안 게임 선발전에 나갈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신 점이다. 선생님의 도움과 이끄심으로 마침내 나는 고등학교 3학년 졸업식 전날 2002년 부산 아시안 게임 국가대표 선발전 55kg급에서 1등을 했다. 하태현, 심권호 등 쟁쟁한 분들을 이기고 우승한 것이다. 그렇게 나는 드디어 국가대표가 됐다.
하지만 태극마크를 달고 들어간 20살 새내기의 선수촌 생활은 쉽지 않았다. 가족같은 분위기에서 화초처럼 성장한 나는 경쟁이 심하고 쟁쟁한 선배님들과 함께하는 선수촌 생활에서 삭막함을 느꼈다. 훈련의 강도도 엄청났고, 마땅히 의지할 분도 없었다.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었던 시기였다.
그 때문일까. 부산 아시안 게임에서의 나의 성적은 참담했다. 나는 국제대회 경험도 없는 어린 나이였다. 처음에 상대한 선수가 카자흐스탄 선수였는데, 입장할 때부터 내 몸은 굳어있었다. 필요 이상으로 긴장한 것이다. 시합을 어떻게 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결국 부산 아시안 게임 레슬링 종목에서 나만 메달을 따지 못했다. 다른 형님들은 금메달, 은메달, 동메달을 목에 걸었지만 대표팀에서 나만 메달이 없었다. 절망했다. 그럴 만도 했다. 국내 경기는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지만 아직 국제대회에 나갈 만큼의 실력은 아니었던 것이다. 하지만 당시 결과는 내가 더 멀리 갈 수 있는, 더 오래 레슬링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지 않았나 생각된다. 그때의 실패가 없었다면 나는 자만했을 것이고, 결과적으로 그때의 실패가 강약조절을 하며 긴 걸음을 걸을 수 있는 계기가 됐다. 그때의 실패는 실패가 아니었다.
글 _ 정지현 (2004 아테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경기도 안양이 고향이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 레슬링 그레코로만형 60kg급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또 2010년 광저우 아시안 게임 레슬링 그레코로만형 60kg급 은메달, 2014년 제17회 인천 아시안게임 레슬링 그레코로만형 71kg급 금메달을 획득했다. 2017년부터 2022년까지 레슬링 국가대표팀 코치를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