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세검정본당 ‘아빠는 요리사’에 참여한 아빠들이 8일 성당 주방에서 주일학교 초등부 아이들에게 줄 간식을 만들고 있다.
성당 주방이 앞치마를 두른 10여 명의 남성들로 분주하다. 다진 고기를 반죽하고, 위에 토핑을 얹어 예쁘게 포장까지 하는 모습이 전문 식당 요리사를 방불케 한다. 이들은 토요 어린이 미사를 마치고 나온 아이들에게 간식을 만들어주기 위해 모인 본당 주일학교 학생 ‘아빠들’이다.
서울대교구 세검정본당(주임 조신형 신부)이 8일 초·중·고등부 주일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본당 자모회를 대신해 아빠들이 요리하는 ‘아빠는 요리사’ 행사를 열었다. 아빠들은 7주에 한 번씩 성당에서 직접 초·중·고등부 주일학교 학생들에게 음식을 만들어주고 있다. 지난해 봄에 시작해 이날까지 벌써 9번째로, 이젠 분업과 음식 맛까지 두 마리 토끼를 잡고 있다.
서울 세검정본당 '아빠를 요리사'에 참여한 아빠들이 8일 성당 주방에서 아이들에게 줄 간식을 만들고 있다.
이날 아빠들은 어린이 미사가 끝나는 시간에 맞춰 미리 아이들과 학부모들이 먹을 ‘미트볼 버터롤’ 100인분을 만들었다. 내친김에 이날 저녁에 중·고등부 학생들에게 줄 ‘디트로이트 피자’까지, 아빠표 음식만 400인분을 뚝딱 만들었다. 나름대로 분담해 재빠르게 움직이는 아빠들의 손이 지치지 않는 이유는 자녀들의 평가가 늘 ‘아빠 최고’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메뉴 선정부터 요리까지 ‘아빠는 요리사’의 기둥 역할을 하는 김지원(베르나르도) 기획분과장은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메뉴를 고심해 만들고 있다”며 “아이들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면 뿌듯하고 기분이 절로 좋아진다”고 미소 지었다.
일일 요리사가 된 한 아빠가 8일 어린이 미사를 마치고 온 아이들에게 간식을 나눠주고 있다.
아빠들이 자녀 위한 간식 직접 만들어
신앙 유무 넘어 성인 남성 모두에 개방
남성 모임 구심점, 선교 역할도 톡톡
아이들의 반응은 열광적이다. 김우진(요한 세례자, 초5)군은 “매번 맛있는 요리를 해주셔서 정말 감사하다”며 “빨리 다음 요리하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고 했다. 송태린(에밀리아, 초6)·태빈(라파엘라·초5)양은 “아빠들이 해주시는 요리는 매번 최고”라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본당의 ‘아빠는 요리사’를 더욱 특별하게 만드는 요소는 ‘개방성’과 ‘선교’다. 연령대와 자녀 유무를 넘어 성인 남성이면 누구나 참여 가능하며 심지어 타 본당 신자, 비신자여도 요리사가 될 수 있다. 나아가 ‘아빠는 요리사’는 본당 남성들이 한데 모이는 구심점이 되고, 영세받지 않았던 외짝 교우 아빠들도 하나둘 참여하면서 신앙에 관심을 갖게 하는 ‘다리’가 되고 있다.
‘아빠는 요리사’ 참가자 모집 등 실무를 담당하는 송영석(안토니오) 청소년분과장은 “모임의 가장 큰 특징이라면 특정한 ‘책임’을 떠맡는 장이 없고, 모두가 부담 없이 요리사로서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이라며 “교우가 아닌 아빠들도 있는데, 아이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주겠다는 마음 하나로 모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예비신자 아빠 김형중씨는 “주일학교에 다니는 두 자녀를 따라 성당에 나오다가 모임을 알게 됐고, 그 덕에 지금은 교리교육도 받고 있다”며 “이전에 성당에 오면 미사만 다녀가고 겉도는 느낌이 있었지만, 동료 아빠들과 아이들을 위하는 요리를 하면서 소속감도 생기고 신앙에 더 관심을 갖게 됐다”고 했다.
예비 아빠로 이날 처음 참여한 이재승(요한 보스코)씨는 “지금까지 주로 청년회 활동에만 참여해왔는데, ‘아빠는 요리사’를 통해 더 다양한 연령대의 신자분들과도 연결고리가 이어진 느낌”이라면서 “요리 실력은 미숙하지만, 많은 분과 함께 자녀들을 위하면서 제 역할을 새롭게 갖게 돼 좋다”고 밝혔다.
장현민 기자 memo@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