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민 300만 시대, 부모의 환대 속에 등·하교 하는 어린이들 사이에서 마땅히 보여야 할 이주아동이 보이지 않는다. 뉴시스
9월 새 학기가 시작됐다. 설레는 마음으로 책가방을 들고 등교를 하는 아이들 사이, 보여야 할 이들이 보이지 않는다. 300만 명. 우리나라에 사는 이주민 수가 이만큼에 이르지만, 그들의 자녀인 이주아동들이 학교에서 눈에 띄지 않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K-컬처 등 영향으로 세계화를 향해 발돋움하고 있지만, 국내 이주민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2월 전남 나주 벽돌 제조공장에서는 31살 스리랑카 이주노동자가 지게차에 묶여 매달리는 일이 있었고, 의료보험에 가입하지 못해 병환을 참다가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된 이들도 적지 않다.
‘제111차 세계 이주민과 난민의 날’(28일)을 맞아 서울대교구 이주사목위원회와 그 현실을 두 차례에 걸쳐 짚어본다.
서울대교구 이주사목위원회가 2023년 9월 24일 마련한 제109차 세계 이주민과 난민의 날 행사에서 콜롬비아 전통의상을 입은 남미 공동체 이주민들과 교구장 정순택 대주교(왼쪽 두 번째), 이주사목위원장 유상혁 신부가 환하게 웃고 있다. 가톨릭평화신문DB
“이집트에서 온 저희는 2016년 종교적 이유로 목숨을 위협받고 한국에 난민 신청을 했습니다. 그러나 건강 문제에 코로나19 팬데믹까지 겹치면서 비자를 갱신하지 못해 미등록 이주민 신세가 됐습니다. 고국으로 돌아갈 수도 없고, 미등록 이주민이 된 뒤 캄캄하기만 합니다. 사는 게 여의치 않아 둘째 아이의 장애 진단도 최근에야 받았습니다. 아이들이 고등학교까지는 마쳤으면 좋겠지만, 너무나 먼 꿈만 같습니다.”
서울 이주사목위 위원장 유상혁 신부는 “미등록 이주민, 특히 이주아동들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존재하지 않는 ‘유령 아동’으로 살아가고 있다”며 관심을 호소했다. 미등록 이주아동이란 미등록 이주민의 자녀로, 한국에서 태어나거나 자랐지만 서류상 존재하지 않아 보호받지 못하는 아동을 의미한다. 출생 신고가 되지 않아,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전문가들은 이러한 아동들이 2~3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유 신부는 “이들은 의료보험이 없어 3~4배에 달하는 의료비를 감당하지 못해 병원에 갈 수 없고, 부모가 일하는 동안 집에 혼자 방치돼 언어 발달이 늦어지는 것은 물론, 제대로 된 학습도 받지 못해 사회에서 점점 도태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서울대교구 이주사목위원회 위원장 유상혁 신부가 지난해 5월 24일 20주년 기념 미사를 봉헌하기 위해 다문화·이주노동자 가정 자녀들을 24시간 돌보는 ‘베들레헴어린이집’을 찾았다. 가톨릭평화방송DB
현 제도에서 미등록 이주아동이 학교에 입학은 할 수 있다. 한국이 비준한 ‘UN 아동권리협약’에 따라서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미등록 이주아동의 ‘학년 선정’부터 어려움을 겪어 자체적으로 입학을 거부하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 7월 부모가 출생신고를 하지 않아도 의료기관이 지방자치단체단체에 출생 사실을 통보하고 지자체가 출생 신고를 하는 ‘출생통보제’가 시행됐지만, 이주민은 해당하지 않는다. 인종·국적·출신에 관계없이 모든 아이가 건강한 성인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아동 권리가 보편적으로 보장되지 못하는 것이다. ‘보편적 출생등록제’의 필요성이 계속 나오는 이유다.
유 신부는 “미등록 이주아동을 ‘유령 아동’으로 방치하는 것은 아동의 권리를 빼앗는 국가적 폭력일 수 있다”며 “보편적 출생등록제는 시민권을 주는 것이 아닌, 아동이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하는 최소한의 배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떤 모습으로 자랄지 모르는 아이들에게 적절한 교육을 보장하는 것은 한국 사회가 그들의 희망에 동반하는 것”이라며 “우리 사회에서 최소한 미등록 이주아동에 대한 더 많은 대화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