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부교구와 제주교구 평협 임원들이 18일 의정부교구 황사영 순교순례지에서 의정부교구장 손희송 주교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님, 기뻐하소서….”
18일 의정부교구 황사영 순교순례지 황사영(알렉시오, 1775~1801) 순교자 묘 앞에서 주모송이 울려 퍼졌다. 의정부교구 신자들과 황사영의 아내 정난주(마리아, 1773~1838)의 묘를 대정성지로 조성해 정난주 증거자를 기리는 제주교구 신자들이 함께 바치는 기도다. 두 교구 신앙의 후손들은 끝까지 믿음을 지키며 가정 성화의 모범을 보여준 부부의 삶을 함께 기억했다. 황사영 알렉시오·정난주 마리아 부부는 박해 시기에 남편은 서소문 밖에서 순교하고 아내와 아들은 노비가 돼 제주도로 유배당했다.
의정부교구 평신도사도직협의회는 황사영 순교순례지 성역화를 준비하면서 제주교구 평신도사도직협의회와 함께 ‘황사영 알렉시오, 정난주 마리아 부부를 잇는 순례길’을 계획했다. 두 교구 평협의 순례 소식에 한국평협도 지원에 나섰다. 5월에는 의정부 평협 임원들이 제주교구를 방문해 아내 정난주 마리아의 삶과 신앙을 되새겼고, 9월 순교자 성월을 맞아 18~20일 제주 평협 임원들이 의정부교구를 찾아 남편 황사영 알렉시오의 영성을 새롭게 배우는 시간을 보냈다.
제주 평협 이남준(요한) 회장은 “부부의 신앙이 지금까지 이어져 두 교구 신자들이 함께 모여 기도하게 돼 감격스럽다”면서 “우리가 하느님 안에서 하나임을 가슴 깊이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의정부 평협 고진철(라우렌시오) 회장은 “이번 순례를 계기로 성지와 순례지에 더 많은 이가 관심을 갖게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순례단은 황사영 순교순례지에서 조한건(한국교회사연구소 소장) 신부의 한국 천주교 창설 역사와 황사영 알렉시오의 삶에 대한 강의를 들었다. 이튿날에는 마재 성가정 성지에서 미사를 봉헌한 뒤 성지 인근 정약현 묘를 찾아가 정난주 마리아 묘에서 가져온 흙을 뿌리며 200여 년 만에 딸과 아버지의 만남을 성사시켰다. 마재 성가정 성지 일대는 정난주 마리아의 아버지 정약현과 형제들(정약전·정약종·정약용)의 고향으로 정난주의 친정이다. 순례단은 20일 양주순교성지 성전봉헌식에도 함께하며 순교한 신앙 선조들을 위해 기도했다.
의정부교구장 손희송 주교는 18일 황사영 순교순례지에서 제주 순례단을 환영하며 미사를 주례했다. 손 주교는 미사 강론에서 “지금 누구보다 기뻐하실 분은 황사영 순교자이실 것”이라며 “순교자가 그토록 원했던 신앙의 자유를 얻었고, 그 후손들이 자신의 아내와 아들까지 기억하면서 미사를 하는 건 굉장히 뜻깊은 일”이라고 말했다. 이어 “신앙인은 세상 안에 살지만, 세상과는 다르게 살아야 한다”면서 “순교자들처럼 열심히 기도하고 꾸준히 성경을 읽으며 하느님 말씀의 힘으로 살자”고 당부했다.
이번 순례에는 두 교구 평협 임원과 담당 사제, 한국평협 임원 등 40여 명이 참여했다. 두 교구는 앞으로 황사영·정난주 부부 관련 성지와 순례지를 순례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운영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