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고인의 자녀에게 유무죄 묻는 ‘연민의 판사’

(가톨릭평화신문)
판시 시절의 프랭크 카프리오씨. 위키피디아


“너희 아빠가 유죄라고 생각하니, 무죄라고 생각하니?”

“유죄요!” 과속 운전으로 벌금을 낼 위기에 처한 한 남성의 어린 아들 답변에 재판정이 웃음바다가 됐다. 판사는 곧 “정직한 아이를 둔 훌륭한 가족”이라며 예상과 달리 남성에게 무죄 판결을 내렸다.

가톨릭 신자이자 법정에 피고인 자녀를 불러 이들의 입장을 판결에 반영하기로 유명한 미국 로드아일랜드 주(州) 법원의 프랭크 카프리오 판사(88) 이야기다. 그의 이같은 자비로운 마음이 곁들인 판결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퍼져 수억 회에 이르는 조회수를 기록했다.

미국 사회뿐만 아니라, 온라인을 통해서도 ‘연민의 판사’로 잘 알려진 카프리오 판사가 최근 미국 가톨릭통신(CNA)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근황을 전했다. “저는 오랜 시간을 깊은 신앙을 지닌 신자로 지냈습니다. 특혜받은 어린 시절을 보냈지요. 그것은 바로 가난하게 자란 것입니다.”

그의 아버지는 우유 배달부로 일했던 이탈리아 이민자였다. 카프리오 판사는 “어느 날 아침, 아버지는 나와 형을 새벽 4시에 깨워 트럭에서 함께 일하게 했다”며 “그 시간 저는 사람들을 대하는 법과 이해심, 그리고 연민이라는 예수님이 전하신 가장 귀한 교훈을 배웠다”고 말했다.

1985년 마침내 판사가 됐을 때, 그는 “처음 법정에서 만난 한 여성은 여러 차례 주정차 위반을 했는데, 그때 강경하게 벌금 전액을 청구하고 차를 몰수했다”고 고백했다. 그러나 이 말을 들은 그의 아버지는 대견스러워하기보다 도리어 나무랐다고 한다. “오늘 너는 혼자 아이를 셋 키우는 그 여성에게서 저녁 식사 한 끼를 빼앗아 간 거야!”

이후 그는 법을 판단하는 위치에 있더라도 그것을 함부로 휘두를 수는 없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카프리오 판사는 “법정에 오는 사람 대부분은 그저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평범하고 근면한 이들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고 했다.

그는 노인, 미혼모, 이민자들이 법정에 설 때면 엄격한 판단은 더디게, 연민과 친절은 빠르게 보여왔다. 한 번은 어린 딸을 데리고 법정에 온 미혼모를 보고 “엄마를 걱정하는 딸의 눈을 본 순간, 진정한 의미에서 공정이 무엇인지 고민해보게 됐다”고도 했다.

2023년 은퇴한 그는 최근 췌장암 진단을 받은 사실을 전했다. 그는 자신을 응원하는 이들을 향해 “처음엔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했지만, 곧 축복으로 가득 찬 인생을 살아왔다는 것을 깨달았다”면서 “의학적 치료를 받고 있지만 온전한 방법은 없고, 오랫동안 깊고 지속적인 신앙을 지녀왔기에 주님을 믿는 기도의 힘이 저의 마지막 희망이라 여긴다. 그간 받은 사랑과 격려를 바탕으로 하느님 자녀로서 더욱 연민을 베풀며 살도록 기도해주길 바란다”고 요청했다. 그러면서 “우리 모두는 약간의 연민을 받을 자격이 있다”며 “인생에서 친절은 항상 돌아온다는 것을 기억하며 다른 이에게 친절하고, 섣부른 판단보다는 자비를 베푸는 예수님의 길을 따라가자”고 당부했다.



박예슬 기자 okkcc8@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