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신대륙 출신 프란치스코 교황을 잃은 라틴아메리카 신자들은 “아버지를 잃은 심정”이라며 애도했다. 특히 열악한 환경 속에서 더 나은 삶을 향해 타국으로 향하는 이민자들을 사랑했던 교황을 기억하며 깊은 존경심과 슬픔을 내비쳤다.
교황의 고국 아르헨티나 정부는 교황 선종 직후부터 일주일간 국가 애도 기간으로 선포했다. 아르헨티나 국민들은 교황을 ‘가난한 이들의 대변인’으로 기억하고 있다. 2013년 즉위 이후 아르헨티나를 방문하진 못했지만, 국민들은 그가 늘 곁에 있는 것처럼 느꼈다고 한다. 로렌초 데 베디아 신부는 영국 매체 가디언에 “교황은 빈민가에 있는 모든 사람과 대화했다”며 “그곳 사람들은 소외되고 버림받았다고 느꼈지만, 교황이 그들을 존엄하게 대했다”고 말했다.
교황이 생전 시즌권을 사둘 정도로 열광했던 고향 부에노스아이레스 연고 아르헨티나 프로축구팀 산 로렌조는 예정된 경기와 행사를 보류했다. 산 로렌조는 지난해 팀 ‘골수팬’인 교황을 위해 새로운 홈 경기장 이름을 프란치스코 스타디움으로 하겠다는 의사를 교황에게 전달하기도 했다. 지난 4월 21일 구단 측은 교황은 여러 상과 대중의 인정을 받는 것은 거부하면서도 경기장 명명에 대해선 동의했다고 밝혔다.
2013년 교황 사도궁을 방문했던 아르헨티나 축구 스타 리오넬 메시도 교황 알현 당시 사진을 자신의 SNS에 게재하며 “이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어주셔서 감사하다”고 전했다.
중남미 출신 이민자들도 슬픔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교황은 생전 이주민을 환대할 것을 각국 정부에게 끊임없이 요청했다. 최근까지도 미국·멕시코 국경에 장벽을 세우겠다고 공언하고 이민자 탄압을 시작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대척 관계를 이어갔었다. 교황은 “국경에 다리를 짓는 게 아니라 벽을 쌓는 자는 그리스도인이 아니다”라고 강도 높게 비판한 바 있다.
이민자들은 그의 생전 업적을 칭송하며 애도했다. 베네수엘라 출신 칠레 이주민인 마리셀라 게레로씨는 AFP에 “그의 말은 고향을 떠난 모두에게 힘이 됐다”고 기억했다. 베네수엘라 출신으로 미국 입국이 좌절된 에릭손 세라노씨는 “교황은 환상적인 사람”이라면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이민자 탄압을 멈추라고 말한 유일한 분”이라고 전했다. 교황의 멕시코 순방 당시 국경에서 피난처를 제공했던 프란치스코 칼빌로 신부는 “‘이민자의 천사’가 세상을 떠나 대단히 슬프다”고 말했다.
히스패닉들이 많은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에서도 애도 물결이 이어졌다. 콜롬비아 출신 론도뇨씨는 “라틴계로서 우리는 그에게 공감했다”며 “교황과 같은 사람이 차기 교황이 되기를 바란다”고 희망했다.
AFP에 따르면 쿠바에서도 교황을 위한 3일간의 애도 기간이 선포됐다. 미겔 디에스카넬 쿠바 대통령도 4월 24일 하바나 대성당에서 거행된 미사에 참여했다. 쿠바는 1992년에서야 종교의 자유가 보장됐다. 교황은 2015년과 2016년 두 차례나 쿠바를 사목 방문하고, 미국과 쿠바 간 외교 갈등을 중재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런 교황을 기억하며 쿠바 현지에서도 추모 물결이 이어졌고, 4월 24일 봉헌된 미사에는 작별 인사를 하려는 사람들로 북적였다고 전해졌다. 24세 의사 레이네리스 로페즈씨는 “교황은 쿠바와 미국은 연결하는 다리와 같은 존재였다”고 설명했다.
전 세계가 교황 잃은 슬픔과 애도 표해
프란치스코 교황의 발길이 닿았던 지역 곳곳에서는 조종이 울려 퍼졌다.
교황은 2021년 이슬람 성전주의자 지하디스트에 의해 극심한 고통을 겪은 이라크를 역대 교황 가운데 최초로 방문했다. 교황이 머물렀던 이라크 카라코시에 있는 알타헤라 교회에서는 수십 명의 가톨릭 신자들이 부활절을 기리면서 동시에 교황의 선종을 애도했다.
신자 카둔 유하나씨는 “교황님께서 지하디스트들이 교회를 약탈하고, 십자가를 불태운 이곳을 찾아준 데 대해 깊은 사랑으로 기억하고 있다”며 “교황님은 아버지가 자식을 지켜보듯 중동 지역을 바라봤고, 그의 선종은 그리스도인에게 큰 좌절일 수밖에 없다”고 슬퍼했다.
교황이 생전 각별한 애정과 관심을 보였던 가자지구의 유일한 가톨릭 공동체인 성가정 성당도 교황의 선종을 슬퍼했다. 본당 주임 가브리엘 로마넬리 신부는 교황과 마지막으로 통화한 내용을 공개하기도 했다. 로마넬리 신부는 “교황님께서는 1년 반이 넘는 기간 동안 매일 전화를 걸어와 가자지구 주민들과 아이들을 보호해달라고 부탁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이 작은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매일 사방으로 싸워야만 했던 한 성직자를 잃었다”고 애통해했다.
이스라엘 예루살렘의 주님무덤성당에도 교황을 애도하기 위해 많은 인파가 모였다. 예루살렘 라틴 총대주교 피에르바티스타 피자발라 추기경 주례로 거행된 추모미사에서는 교황이 생전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을 거듭 비난한 메시지를 다시 떠올렸다. 우크라이나-그리스 가톨릭교회 미콜라 비초크 추기경 주례 미사에서는 전쟁 중인 나라 출신 성직자들이 공동집전하며 교황이 생전 호소했던 평화의 가치를 다시 기억했다.
75세 신자 나마 타르샤씨는 “교황님은 우리에게 희망을 줬다. 전쟁 상황에서도 영원히 그가 남긴 희망을 간직할 것”이라며 “예수님의 빈 무덤이 자리한 이곳에서 교황님을 위한 미사를 드리는 것이야말로 부활의 의미를 되새기는 매우 중요한 신앙이 될 것”이라고 했다.
교황이 2023년 9월 찾았던 ‘아시아의 작은 교회’ 몽골에서도 추모 열기가 뜨겁다. 당시 교황을 알현했던 62세 빌레그마 수흐바타르씨는 “교황님께서는 겸손하고 우아하며 평화를 간직하신 분이었다”면서 “지금도 교황님의 손을 잡았을 때 감동이 여전하다”고 말했다.
몽골 울란바토르 지목구장 조르조 마렌고 추기경은 4월 23일 추모미사에서 “교황님의 몽골 방문은 작은 신앙 공동체를 이루는 신자들에게 매우 큰 의미로 남아 있다”며 “베드로의 후계자가 이곳에 관심을 기울인 것은 지난 선교사들의 노고와 몽골 신자들의 삶과 희생을 교회의 수장으로부터 인정받았다는 것을 뜻한다”고 말했다.
동유럽의 헝가리·크로아티아·불가리아에서는 각국이 기관마다 바티칸 국기를 달며 추모 대열에 동참했다. 헝가리인 라호스 바모시씨는 “가장 낮고 그늘진 곳을 직접 찾아다녔던 교황의 모습을 더는 볼 수 없다는 것이 무척 슬프다”면서 “세상은 교황이 설파한 평화와 사랑의 메시지를 좀더 주의 깊게 들었어야만 했다”고 말했다. 교황 추모 행사에 참여한 안토니야 그루비시치 수녀도 “한 명의 위대한 사람이 우리 곁을 떠났다는 생각에 매우 힘들다”며 “지상에서 우리를 위해 기도해주셨던 것처럼 주님 곁에서도 저희를 위해 빌어주실 것이라 믿는다”고 했다.
교황을 추모하는 분위기는 아시아에서도 이어졌다. 불교 국가 스리랑카에서는 모든 성당에도 반기로 건 백기와 바티칸 국기를 달고, 일반 주민들도 하얀 깃발을 달고 세상을 떠난 교황의 안식을 바랐다.
‘무슬림 국가’ 방글라데시에서도 4월 24일부터 사흘간을 애도 기간으로 선포했다. 방글라데시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사무국장 리톤 휴버트 고메스 신부는 “정부의 애도는 교황님께서 강조한 공동체의 조화와 공유된 가치, 특히 포용적인 사회를 구축하는 데 대한 존중을 보인 것”이라고 평했다.
중국 정부도 교황이 선종 하루 뒤인 4월 22일 공개한 성명에서 “중국은 교황의 선종에 애도를 표한다”며 “최근 몇 년간 교황청과 중국은 건설적인 접촉을 유지하면서 유의미한 교류를 해왔고, 앞으로도 교황청과 협력해 지속적인 관계 개선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중국 신자들도 북경의 경당에서 회합을 열고 교황 선종을 함께 슬퍼했다. 한 신자는 교황의 선종 소식을 듣고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것 같이 고통스럽다”며 “늘 우리에게 서로를 사랑하라고 가르쳐주신 교황님 말씀을 마음에 새기며 교황님의 안식을 기도할 것”이라고 말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무슬림 신자를 거느린 인도네시아에서도 추모 물결이 일었다. 인도네시아는 2억 8000만 인구 중 약 90%가 무슬림 신자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해 인도네시아를 사목 방문해 가톨릭교회가 종교 간 대화를 증진하려는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인도네시아 유명 이슬람 단체와 신자들은 공개 성명과 SNS 게시물을 통해 애도를 표했다. 무슬림 신자 4000만 명이 속한 나들라틀 울라마의 야흐야 촐릴 회장은 “교황은 가톨릭교회를 인류의 보호자이자 수호자로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다”고 추모했다. SNS 플랫폼 X에서는 인도네시아어로 프란치스코 교황을 지칭하는 ‘Paus Fransiskus’가 트렌드에 오르기도 했다.
종교를 넘어 사랑으로 애도
프란치스코 교황 선종 소식에 이웃 종교들도 애도 메시지를 내며 추모했다. 이웃 종교 지도자들은 교황의 영혼에 안식을 기원하고 종교 일치를 위해 힘을 보탠 인물이라고 입을 모았다.
티베트 불교 지도자 달라이 라마(14대)는 주인도 교황대사 레오폴도 지렐리 대주교에게 서한을 보내 “프란치스코 교황은 타인을 섬기는 데 헌신한 인물”이라며 “자신의 행동을 통해 단순하지만 의미 있는 삶을 사는 방법을 끊임 없이 보여줬다”고 기억했다. 이어 “우리가 그분께 바칠 수 있는 최고의 찬사는 따뜻한 마음을 지니고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방식으로 어디에서든 타인을 섬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티베트 불교 공동체는 인도 다람살라에 있는 주요 사원인 츠글라크항에서 4월 27일까지 추모 예절을 진행했다.
성공회 대표단은 4월 26일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서 거행된 교황의 장례미사에 참여했다. 성공회 공동체의 고위 성직자와 평신도 지도자들로 구성됐다. 성공회-가톨릭 국제위원회와 국제 성공회-로마 가톨릭 일치와 선교위원회의 공동 의장들도 참석했다. 대표단은 브라질 성공회 교회 마리네스 바소토 대주교가 이끈다. 바소토 대주교는 앞서 성명을 통해 “최초의 라틴아메리카 출신 교황의 놀라운 삶과 사역에 감사드릴 수 있어 영광”이라며 “평화와 사랑의 메시지를 몸소 실천한 겸손한 종이셨다”고 전했다.
정교회 측은 장례식에 조문단을 파견했다. 4월 25일 튀르키예에서 바르톨로메오 1세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를 비롯해, 에마누엘 칼케돈 대주교, 아에티오스 대주교,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청 공보국장 니콜라스-게오르기오스 파파크리스투 공보국장이 로마에 당도했다. 정교회는 성명을 통해 교황을 “교회 일치를 위해 헌신한 인물”이라며 “정교회의 진실한 친구”라고 묘사했다. 특히 정교회 측이 장례미사에 참여해 비잔틴 전례 장례 예식에 따른 ‘동방 교회의 기도’를 부르며 교황의 영혼에 안식을 기원하는 모습은 장관을 연출하기도 했다.
바르톨로메오 총대주교는 4월 22일 부활절 주간 화요일 이탈리아와 오스트리아에서 온 가톨릭 성직자와 신학생들을 접견하는 중에도 프란치스코 교황을 기억하면서 “정교회와 깊은 우정을 함께 나눈 형제”라며 “인류의 공동선을 위해 함께 노력해온 인물”이라고 회상했다.
세계교회협의회(WCC)도 교황 장례식에 조문단을 파견했다. WCC 중앙위원회 위원장 하인리히 베드포드-스트롬 루터교 주교는 “하느님의 특별한 목동을 잃은 것에 깊은 애도를 표한다”며 “로마 가톨릭 교회와 함께할 것”이라고 했다.
박예슬 기자 okkcc8@cpbc.co.kr
이준태 기자 ouioui@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