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에서 내몰린 사람들, ‘차별의 벽’ 여전

(가톨릭평화신문)
미국 텍사스주 리오그란데 강변 국경지대에서 페루 이민자들이 강둑을 따라 걷고 있다. OSV


더 나은 일자리와 안정을 찾아, 혹은 정치적 혼란을 이유로 고향을 떠난 이들이 새 보금자리에서도 지위나 신분이 불안정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1월 발간된 미국 여론조사기관 퓨리서치센터 보고서에 따르면, 조사 대상 국가 전체에서 성인 약 68%는 인종 및 민족 차별이 심각한 것으로 응답해 급격히 늘고 있는 이주민·난민들이 정착 후에도 여전히 제대로 된 삶을 누리지 못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성인 34%는 자신이 사는 지역에서 인종 또는 민족 차별이 매우 심각한 문제(Very big problem)라고 인식했으며, 다른 34%는 중간 정도의 심각한 문제(Moderately big problem)로 생각했다.

특히 조사 대상인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와 라틴아메리카 국가, 튀르키예·방글라데시·인도·스리랑카 등지에서 높게 보고됐다. 한국에서도 과반수(53%)가 인종 및 민족 차별이 심각하다고 생각했다.

지난해 말 국제노동기구(ILO)가 발간한 ‘국제 이주노동자 추정치’ 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 기준 노동 이주 인구는 1억 6770만 명이었는데, 비고용 인구는 1210만 명이었다. 비고용률은 7.2%로 비이주자 비고용률 5.2%보다 2.0%포인트(p) 높았다. 유럽의회도 “난민의 고용률은 현지 국민보다 낮고 임시직 비율이나 실업률이 높았다”고 보고했다.
 
미국으로 이주했던 과테말라 이주자들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로 인해 과테말라로 송환된 모습. OSV


이주민과 비이주민 사이의 임금격차도 두드러졌다. 2020년 발간된 ILO 보고서에 따르면 고소득 국가의 이주민은 내국인 근로자보다 평균 13% 적은 임금을 받았다. 키프로스나 이탈리아·오스트리아 등에서는 시간당 임금 격차가 각각 42%, 30%, 25%로 나타났다.

난민 여성일수록 고용차별을 겪었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영국 비정부기구(NGO) 난민위원회는 “난민 여성은 비난민 여성 혹은 난민 남성과 비교했을 때 임금 상승 가능성이 낮은 경향이 있다”며 “난민 여성일수록 임시직에 종사할 가능성이 높고 정규직 고용이 낮으며 비고용 됐다”고 전했다.

보고서들은 이주민과 난민이 고용차별을 겪는 이유로 언어 장벽이나 출신국 학력 미인정 등을 들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이주민들의 정신건강을 우려 중이다. WHO는 이달 초 발표한 보고서를 통해 “상당수 난민과 이주민의 우울증, 불안,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등 정신건강 문제가 일반 주민에 비해 흔하다”고 전했다. 이주 및 정착에 대한 어려움이나 법적 지위 불안정 등이 원인이다.

아울러 난민의 법적 지위 인정도 힘들다. 유엔난민기구(UNHCR)가 지난 6월 발표한 ‘2024 강제이주보고서’는 지난해 말 기준 전 세계에 강제 이주민만 1억 2210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했다. 2014년 약 6000만 명에서 10년 새 2배 넘게 증가한 수치다. 그럼에도 여전히 난민으로 인정되는 경우는 극소수다. UNHCR에 따르면 지난해 타 국적 시민권을 취득한 인구는 4만 7200명, 영주권까지 합하면 8만 8900명에 불과했다. 난민 인정 건수는 18만 8800건에 그쳤다.

교회는 이주민과 난민을 향해 연민을 호소하고 있다. 레오 14세 교황은 ‘제111차 세계 이주민과 난민의 날’(28일) 담화에서 “평화를 향한 희망과 인간 존엄성을 존중하고자 하는 열망이 자라나는 것이 중요하다”며 “이러한 점은 인류와 다른 창조물들을 만드신 하느님 계획에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이준태 기자 ouioui@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