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돈의 가르침

(가톨릭신문)

신부님, 평안히 계시지요?


은퇴 후 잘 지내신다는 안부는 건너 건너 듣고 있지만 넘쳐 나는 그 열정은 어떻게 다스리고 계신지 궁금하기도 하네요. 제가 알고 있는 많은 신부님 중에 가장 뜨거운 분이셨습니다. 점잖으시면서 발휘하시는 어마어마한 유머 감각도 그립고요. 일 년에 몇 번 성당에 행사 갈 때마다 신부님 생각이 먼저 떠 오르곤 한답니다. 20여 년 전, 부평1동본당 주임 신부님으로 계셨을 때 함께 했던 가을 음악회의 추억을 떠올리면 지금도 늘 기분이 좋아집니다. 얼마 전 가수 남궁옥분님도 근사한 신부님, 참 감사한 신부님으로 기억난다고 신부님의 안부를 궁금해했습니다.


예산은 적지만 우리 본당 신자들과 멋진 가을 음악회를 하고 싶으니 스테파노가 힘 좀 써보라고 말씀하셨죠. 충분치 않은 예산이었지만 신부님의 기에 눌려 한소리 못하고 준비하게 되었지요. 다행히도 그날 초대된 가수 남궁옥분님과 유익종님도 흔쾌히 수락해 주신 덕분에 성황리에 잘 마쳤지요. 앉아서, 서서 빈틈없이 성전을 꽉 채운 형제자매님들의 우레와 같은 박수와 웃음으로 만든 추억이 지금도 맴맴 돌고 있습니다. 농담조차도 진지하게 말씀하시는 묘한 매력을 지니셨지요. 갑자기 성가 가수들은 많이 왔다 갔으니까, 이번엔 대중 가수들로 가을 음악회를 하고 싶다는 말씀에 다소 당황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대중가요하고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는데 신부님이 좋아하시는 유익종님은 꼭 섭외해야 한다는 말씀에 취향도 알게 되었지요. 제가 웃겨도 잘 웃지도 않으시면서 다른 분들에겐 무지하게 웃기니 섭외하면 후회 없을 거라며 여기저기 매니저 역할까지 해 주신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이 지면을 빌려 다시 한번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신부님을 생각하면 꼭 따라붙는 단어가 있습니다. ‘감동’이란 단어입니다. 가을 음악회가 끝나고 그다음 주일에 저를 호출하셨죠. 혹시 음악회 때 제가 무슨 실수라도 했나 싶어 걱정 속에 달려갔는데, 그 걱정을 오히려 감동으로 반전을 주신 신부님. 정말 열의를 다해 무대를 꾸며주신 가수분들에게 본당에서 준비한 예산이 민망해서 잠을 못 잤다 하시며 건네주신 봉투 3개. 잘은 몰라도 그 당시 신부님 한 달 월급을 봉투 하나씩 담으신 3개월분 월급을 꼭 맛있는 거 사 먹으라며 따로 챙겨 주셨지요. 이건 개런티가 아니고 신부가 주는 용돈이라고 안 받으면 혼난다고 아주 강경하셨죠. 두 가수분도 신부님에게 받는 용돈은 생전 처음이라며 당황해하면서도 기뻐했습니다. 저는 더더욱 이게 맞는 건가 싶어 어리둥절했지요. (그 뒤로 다른 신부님에게 받은 적은 아직 없습니다.) 아마도 이 용돈의 추억은 제가 100번도 넘게 자랑하고 다녔을 겁니다. 성당 밖에서요. 왜냐하면 제가 성당 행사에 갔을 때 이 신기하고 기쁜 추억을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그 본당 신부님이 부담 느끼실까 봐 그때마다 꾹꾹 눌렀답니다.


지금이야 말씀드립니다. 그때 주신 용돈, 제 주머니에 없습니다. 나만의 용돈이 아닌 공동체가 같이 쓰는 용돈이라는 가르침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누군가에게 기쁨을 주고 어딘가에서 유용하게 역할을 다하고 있을 겁니다. 그때 이후로 신부님이 주신 용돈의 가르침 성실하게 실천하고 있습니다. 이 가르침은 죽을 때까지 끊임없이 실천하며 살겠습니다. 안부를 드린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건강하시고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행복하길 간절히 바랍니다. 늘 잊지 않고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정윤화 베드로 신부님.



글 _ 장용 스테파노(방송인·한국가위바위보협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