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단상] 일상을 아름답게 하는 음악(손일훈 마르첼리노, 작곡가)

(가톨릭평화신문)



유럽에 살면서 여행뿐만 아니라 공연이나 작품 발표를 위해 다른 도시나 나라로 이동할 때가 많다. 한국에서는 대부분 공연이 서울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그럴 일이 별로 없지만, 네덜란드·영국·스위스·프랑스 등 주요 무대가 상당히 넓고 다양하게 펼쳐져 있는 유럽에서는 잦은 이동 시간이 더욱 특별하다.

독일의 경우만 봐도 현재 내가 살고 있는 도시 본에서 베를린까지 기차로 5시간 정도를 가야 한다. 열차 내 레스토랑에서 간단한 식사를 할 수도 있지만, 미리 역에서 원하는 음식을 골라 타는 것이 여행의 재미를 더한다. 그래서 출발 시간보다 여유롭게 도착하거나 환승 도중 기차역을 돌아다닐 때면 역마다 무엇이 다른지, 즐길 거리를 찾곤 한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이나 헤이그·위트레흐트 등 어떤 역에는 나처럼 시간을 보내는 사람을 위한 공용 피아노가 있는데, 항상 누군가 연주하고 구경하며 같이 노래하는 독특한 분위기가 만들어진다. 나도 한 번은 헤이그역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피아노를 치다가 열차 시간이 다 된 걸 알고서는 급하게 마무리한 뒤 뛰어간 적이 있다. 내 상황을 짐작했는지 피아노 주위에서 구경하던 사람들의 웃음과 박수 소리가 들렸고, 서로를 몰라도 그 순간의 즐거움을 뒤로한 채 멀리서 손 인사를 주고받으며 헤어졌던 소소하고도 특별한 기억이 있다.

이 피아노에서 연주되는 음악은 다양했다. 더듬더듬하지만 뜨겁게 ‘라운드 미드나잇’을 연주하는 할아버지, 쇼팽 녹턴을 치는 전공생, 아델 노래를 다 같이 부르는 학생들, 알렐루야를 외치며 영가를 부르는 소울 가득한 남성?. 모두를 위한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역에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았을 때 바쁘게 움직이는 이들 사이로 눈에 들어온 것은 멈춰 선 사람들의 긴 포옹이었다. 누군가는 여행을 왔고, 누군가는 여행을 마치고 돌아가는 순간. 반갑게 재회하며 껴안고 또 눈물을 흘리며 껴안는, 설렘과 아쉬움의 감정이 교차하는 곳. 나는 그 기억을 간직한 채 언젠가 이런 곳에서 사람들이 쉽게 연주할 만한 곡을 작곡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후 나는 한국과 유럽을 자주 오가면서 기차역뿐만 아니라 공항에서도 상당한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같은 만남과 이별인데, 그 감정의 폭이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보다 차 타고 가는 거리일 때 더 커지고, 기차보다는 비행기를 탈 때 더 애틋해지는 게 당연한 걸까?

공항의 분위기는 확실히 뭔가 다르다. 한적한 공항 터미널 벤치에 앉아 이륙하고 착륙하는 비행기를 바라보며, 문득 떠올린 기차역 피아노의 기억을 토대로 나는 피아노 연탄곡 ‘미팅 포인트’를 작곡했다. 수시로 울리는 안내 방송 알림음과 저마다 다른 표정으로 기다리는 사람들의 모습이 아이디어가 되었다. 그 시절, 사랑하는 사람을 배웅했던 기차역에서 누군가의 피아노 소리를 듣고 마음을 위로받았던 것처럼 이 음악도 누군가의 심란한 마음을 달래주길 바라며.

얼마 전 최대환 신부님이 진행하는 cpbc 라디오 ‘음악서재’에 출연했는데, 신부님께서 나를 ‘일상의 작은 공간을 음악으로 풍성하게 채워주는 작곡가’라고 소개해주셨다. 정말 기분 좋은 칭찬이고, 그런 음악을 만들고 싶다.





손일훈 마르첼리노 작곡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