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눈의 들보] “왜 겁을 내느냐? 이 믿음이 약한 자들아!”(마태 8,26)

(가톨릭신문)

한국교회는 서울대교구를 중심으로 2027년 세계청년대회(WYD)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가뜩이나 청년 신자가 귀해진 상황에 청년들이 함께 대규모 국제행사를 준비해서 성공시킨다면 순교자의 피로 세운 한국교회의 국제적 위상도 높아질 것이고, 침체하고 있는 교회 성장의 새로운 동력도 만들 수 있으리라 기대된다.


큰 규모의 국제행사이기도 하지만, 가톨릭신자가 다수를 점하지 않는 종교다원사회에서 개최되기에 교회의 힘만으로는 행사 준비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웃 종교와 함께하기 위한 길을 모색해야 하고,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협조도 구해야 한다. 이런 현실적 고민, 그리고 행사를 더 잘 준비해야 한다는 의지로 어떻게든 국가기관과의 협력구조를 만들어가고 있을 것이다. 그 정점이 ‘2027 제41차 서울 세계청년대회 지원 특별법안’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 법안의 내용을 간략히 정리하자면 서울 세계청년대회의 성공을 위해 국가와 국가기관, 단체의 행정, 재정지원을 의무화하고 조직위원회 활동을 제한할 수밖에 없는 기존 규정에 예외를 적용해 달라는 것이다.


많게는 전 세계 수백만 젊은이들이 참여하는 행사인데 인구의 10% 남짓을 점유하고 있는 종교인 가톨릭교회가 모든 것을 감당할 수 없을 것이고, 국가적 지원 없이는 행사 자체를 진행할 수 없기에 특별법의 요청은 정당하고 불가피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 특별법이 가톨릭교회에 대한 특혜라는 오해를 살 수밖에 없는 것도 현실이다. 당장 불교계가 큰 반발을 하고 있고, 작은 규모의 민족종교도 염려를 거두지 않고 있다. 종교 간 갈등이 가장 적은 안정적 구조를 유지하고 있는 특이한 형태의 종교다원사회인 한국 사회에서 불필요한 갈등을 촉발하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염려되는 지점이다.


교회가 나서서 이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지는 않았으리라 생각하지만, 법안 제정을 마다하지 않는 것도 사실인 만큼 이 법안을 통해 얻게 될 ‘혜택’을 버릴 생각은 없어 보인다. 현실과 이상 사이의 갈등에서 현실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교회와 우리 모두에게 묻는다. 세계청년대회라는 이 거룩한 행사를 돈과 권력의 힘으로 치르고자 하는 욕심이 없는지? 그리고 큰 의미를 가진 축제이지만 이웃에게 행여나 불편을 초래하는 것이 맞는지?


사순 시기, 버림과 비움을 묵상해야 할 때다. 가난한 이들을 위한 교회인지, 가난한 이들과 함께하는 교회인지, 가난한 교회인지를 선택하기는 힘들어도 낮은 자리를 굳이 찾아가 말할 수 없는 이, 들을 수 없는 이, 걸을 수 없는 이의 입이 되고 귀가 되고 손과 발이 되는 길이 바로 복음의 길이라는 것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복음의 길은 영광과 환희로 가득 찬 길이 아니라 십자가의 길이다. 우리는 그 길 끝에서 구원이라는 상급을 받을 것을 믿는 사람, 그리스도인이다. 그 믿음이 약하기에 세상의 권력과 돈의 힘으로 영광된 외향과 승리의 표상을 얻으려 하는 것은 아닌가?


더 큰 믿음을 가져 보자. 한국의 신앙인들이 믿음 속에서 자기 십자가를 기꺼이 지고 복음을 살아가는 모습을 제대로 보인다면 명문화된 특별법 같은 규정이 없더라도 이웃 종교의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것이고, 권한을 가진 정부나 기관들의 협력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결국 2027년 서울 세계청년대회를 우리 교회의 힘으로 성공시키는 영광을 얻을 것이다.


글 _ 이은석 베드로(정의평화민주가톨릭행동 전 사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