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단상] 주님의 탄생, 죽음·부활은 무슨 의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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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모태신앙인이다. 외할아버지가 지어주신 이름과 함께 신부님이 지어주신 세례명을 태어날 때부터 지니고 있다. 어린이집을 다니던 때에도 미사 때 조용히 있을 수 있었기에 (아마 부모님과 떨어져 유아방에 가는 것이 싫어 참았을 것이다) 주일 교중 미사에 온 식구와 같이 참여했다. 아빠가 퇴근한 뒤 자기 전에는 거실 한편 성모상 앞에 앉아 다같이 성가정을 위한 기도로 하루를 마무리하곤 했다.

성모상이 주는 느낌은 왜인지 모르게 따스했고, 매년 성탄절과 부활절이 다가올 때면 엄마와 구유를 만들고 달걀에 그림을 그리던 것도 생각난다. 초등학생이 되어 첫영성체를 준비하며 교리를 듣던 때 옆자리 친구가 자신은 꼭 잘해서 복사가 될 거라고 했다. 내게도 같이 복사가 되지 않겠느냐며 권유하던 친구는 매일 새벽 수녀님에게 모범적인 모습을 보였고, 덕분에 나도 복사가 되었다.

초등학교 3학년부터 중학교 2학년까지 30명 정도 되는 복사들이 어린이 미사 전 다같이 기도하고 일주일 치 복사를 정하곤 했다. 저학년 때에는 새벽 5시에 일어나 세수하고 흰옷을 갖춰 입고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성당으로 향했다. 그 시간이면 약속이라도 한듯 길에서 다른 복사를 만났고, 수녀님이 우리를 따스하게 맞아주셨다.

당시 주임 신부님 미사는 엄숙한 편이었다. 누군가의 기도를 방해하는 일은 있어선 안 됐다. 가려움이든 하품이든 한 시간 가까이 본능을 참아낸 어린 복사들은 신부님 강복을 받고, 간식을 받아 집으로 간 뒤 포근함이 남아있는 침대 속으로 들어가 모자란 잠을 자다가 다시 일어나 학교에 갔다.

중학생 때쯤이었을까, 미사 후 수녀님과 흥미로운 이야기를 나눴다. 기도문을 외우거나 복음 말씀, 강론을 듣는 것 말고도 미사 중에 각자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기도를 하는지에 대하여 말이다. 어느 정도 비슷한 부분도 있었지만, 자세히 들어보니 각자 마음속에 지닌 주님 모습이 달랐다. 그러고 보니 일정한 주기로 바뀌는 신부님들에 따라 미사 분위기도 달라지고, 같은 내용의 복음도 조금씩 다른 시각으로 풀어내는 것이 아닌가?

그때부터 나는 주님과 대화하며 내 기도를 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5~6년간의 복사 활동을 마친 뒤에는 입시를 준비한다는 핑계로 성당을 느슨하게 다니다가, 대학생이 되어서는 다시 어릴 때 함께하던 또래들과 청년 복사를 하고, 또 유학을 가면서 느슨한 신앙생활의 패턴이 반복되었다.

그렇다고 신앙심이 줄어든 것은 아니었다. 매번 빠트리지 않는 식사 전후 기도나, 주님이 급하게 필요할 때 찾는 주모경은 물론이고, 미사를 대신해 개인적으로 주님과 대화하는 시간은 오히려 더 늘어났다. 그렇게 내 안의 주님은 더 뚜렷하게 모습을 드러내셨다. 언젠가 엄마·아빠가 기도하는 방법에 관해 얘기한 적 있는데 엄마의 주님은 인자하고, 아빠의 주님은 유쾌했다. 이를테면 기도 내용이 정확하지 않으면 주님이 그것을 어떻게 들어야 할지 모르기에 방향이 자세해야 한다거나, 때로는 ‘너희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을 왜 나한테 부탁하느냐’는 식으로 대답한다는 것이다. 인자하고 너그러운 엄마와 나의 주님에 비해 아빠의 주님은 황당하고 재밌으면서도 분명 일리가 있었다.

아내는 지난 겨울부터 자연스럽게 식사 전 기도를 외우고, 본인이 종종 연주하는 베토벤·모차르트의 미사곡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런 아내가 성 금요일에 예수님 죽음과 부활이 어떤 의미인지를 물었다. 순간 당황해 역사적 배경부터 교리까지 아는 대로 뒤죽박죽 설명하다 보니 대답을 시원하게 못 했다. 나의 주님, 그리스도의 탄생과 죽음, 그리고 부활은 나에게, 우리에게 무슨 의미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