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말하자면 예전에는 묵주기도를 할 때마다 그저 반복되는 기도문에 지루함을 느끼는 사람이었다. ‘주님의 기도’ ‘성모송’, 그리고 그 사이사이의 ‘영광송’까지. 뭐랄까, 기계적으로 입만 뗐다 하면 끝나는 그런 따분한 기도라고 생각했다. 묵주를 손에 쥐고 기도하는 게 무슨 대단한 의미가 있을까 싶었다. 그냥 신앙생활 중 하나 정도로 여기며 대충 넘기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묵주기도의 ‘묵상’에 대해 알게 되고 체험을 하게 되면서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다. 단순히 기도문을 반복하는 게 아니라, 예수님 생애와 성모님의 삶을 하나하나 마음에 새기며 기도하는 것. 성경 속 장면 그 안으로 들어가 체험하면서 그 과정에서 내 마음이 점점 하느님께로 향하고, 내 삶의 순간들이 하느님과 연결되는 경험을 하게 됐다. 묵주기도는 단순한 반복이 아니라, 내 영혼을 하느님께로 이끄는 다리였다. 그렇게 나는 매일 묵주를 손에 들게 됐다.
이 소중한 깨달음을 누군가와 나누고 싶었다. 특히 내 아이들에게 꼭 전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들에게 묵주기도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처음엔 아들이 “아빠, 이거 왜 이렇게 길어?” 하며 투덜대기도 했다. 그래도 꾸준히, 차근차근 함께 기도하는 시간을 만들었다. 매일 아침 학교에 가기 위해 차에 오르면 묵주를 꺼내 들고 함께 기도했다. “전능하신 천주 성부?”로 시작해 한 단 한 단, 예수님의 삶을 묵상하며 등굣길을 채웠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나자 묵주기도는 우리 부자의 아침 루틴이 됐다. 아들은 어느새 묵주를 쥐고 기도문을 술술 외우게 됐다. 그런데 놀라운 건, 이 루틴이 단순히 ‘아빠가 아들에게 가르쳐준’ 기도가 아니라, 오히려 내가 아들에게서 더 큰 선물을 받고 있다는 점이다.
살면서 누구나 그렇듯 나도 신앙의 열정이 식을 때가 있다. 일이 꼬이고, 스트레스가 쌓이고, 밤잠을 설쳐 아침에 눈을 뜨는 것조차 버거운 날들이 있다. 그런 날엔 솔직히 묵주를 들 생각조차 안 든다. ‘오늘은 그냥 넘어갈까?’ 하는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올 때, 차에 타자마자 아들이 묵주를 꺼내 들며 말한다. “전능하신 천주 성부?” 그 순간 나는 웃음이 터지며 얼떨결에 묵주를 쥐고 기도를 시작한다.
아들의 그 작은 행동은 나에게 하느님 뜻을 다시 일깨워준다. 내가 가르친 기도가 이제는 아들을 통해 나를 다시 하느님께로 이끌고 있다. 피곤하고 지친 아침, 기도할 마음이 전혀 없을 때에도 아들의 목소리는 나를 깨운다. 이게 바로 하느님의 은총이 아니고 무엇이겠나.
묵주기도를 하면서 깨달은 건, 기도란 혼자만의 노력이 아니라 함께할 때 더 큰 힘을 발휘한다는 점이다. 아들과의 등굣길 기도는 단순한 습관을 넘어 우리 부자를 하느님께로 더 가까이 묶어주는 끈이 됐다. 그리고 그 끈은 때로는 내가, 때로는 아들이 단단히 잡아주며 서로를 지탱해준다.
꼭 아이와 함께가 아니더라도, 가족이나 친구, 아니면 혼자라도 좋다. 매일 아침 혹은 저녁, 묵주를 손에 쥐고 하느님과 대화하는 시간을 가져보시라. 처음엔 어색하고 지루할지 모른다. 하지만 꾸준히 해보면 어느 순간 그 기도가 여러분의 삶을 바꾸고, 누군가와의 관계를 더 깊게 만들어줄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나처럼 여러분도 뜻밖의 순간에 하느님 손길을 느끼게 될지도 모른다. 아들의 작은 목소리에서 하느님의 큰 사랑을 발견한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