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돋보기] 교황이 남긴 사랑의 흔적

(가톨릭평화신문)

우리는 보통 누군가를 ‘안다’고 할 때, 그 사람과의 특별한 인연을 내세운다. 특히 그가 유명인일수록 그 인연은 곧잘 과장되기도 한다. 이를테면 “내가 그 사람 집에 가봤다”거나 “내 아내가 그 사람 대학 동기인데, 사돈의 팔촌쯤 된다”는 식이다.

지금, 전 세계가 프란치스코 교황 ‘추모 중’이다. 교황과 깊은 인연이 있었던 사람은 물론이고, 잠시 손을 잡아본 경험이 있는 이들의 일화와 에피소드가 SNS를 달구고 있다. 성당을 다니지는 않지만 사실은 ‘서류상 신자’라 고백하고, 신앙에서 멀어진 이들도 “자녀의 세례명을 프란치스코로 지었다”며 각자의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이역만리에서 온 한 노인이 지구촌 이웃들에게 잊지 못할 사랑의 흔적을 남기고 떠났다. 그가 지나간 자리마다 이야기 꽃이 피어난다. 그는 분명 1인분의 삶밖에 살 수 없었을 텐데, 단 한 사람이 들어갈 수 있는 소박한 목재 관에 몸을 뉘었을 뿐인데, 그를 추모하는 목소리는 전 세계를 뒤덮었다. 누군가는 그를 책으로 기억하고, 누군가는 사진전을 준비한다. 제각각 그의 사랑을 기억하는 방식이다.

직접 교황을 만나본 적 없는 이들조차 그를 그리워한다. 만나지 못했다고 해서 아쉬워하지 않는다. 그의 앞꿈치는 언제나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향해 있었기에, 그와의 만남은 더 많은 사랑이 필요한 이들에게 위로가 되었을 것이므로, 그것으로 괜찮다고 말한다.

지난해 9월, 열흘 넘게 바티칸에서 교황의 거리를 걸었다. 한국 주교단이 프란치스코 교황을 알현하러 가는 여정을 따라가 취재했지만 교황의 옷자락도 볼 수 없었다. 교황이 방한한 2014년에는 육아휴직 중이었다. 명동에 오신 교황을 볼 기회였지만, 그마저 놓쳤다. 그 해에 태어난 아이의 세례명을 ‘프란치스코’로 짓고 기뻐했다.

교황이 걸었던 명동 거리, 지금 그곳에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사진이 걸려 있다. 환한 미소로 손을 흔들고 있다. “기쁨은 신앙인의 신분증입니다”라는 말과 함께. 그는 우리에게 사랑의 기쁨을 알려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