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울산대병원이 호스피스 병동을 폐쇄하면서 해당 지역 사회와 관련 학계가 동요하고 있다. 울산대병원은 2013년 호스피스 서비스를 시작한 뒤 2019년부터 권역별 센터로서 울산·경남 지역 호스피스 분야를 책임져왔다. 하지만 지난달 ‘상급종합병원 구조 전환 시범사업’의 일환으로 중증 환자 병상을 확보하겠다며 호스피스 기관 폐업 신고를 했다. 줄어드는 병상은 10개로 미미해 보이지만 62개였던 해당 권역의 호스피스 병상이 52개로 줄고, 상급종합병원 수준의 호스피스 서비스가 전무해지는 결과를 낳았다. 또 국가 정책에 따른 조처라는 명분을 내세웠기 때문에 다른 대학병원도 그 뒤를 따를 가능성이 열렸다.
호스피스·완화의료 돌봄은 2016년 제정된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약칭 : 연명의료결정법)이 소극적 안락사를 조장하는 악법이 되지 않게 해줄 핵심적 안전장치다. 하지만 법 시행 7년이 되어가는 지금, 호스피스·완화의료 서비스는 현재의 의료보험체제 아래에서는 여전히 병원에 수익을 가져다주지 못하는 ‘미운 오리 새끼’로, 정착·확대되기는커녕 국가 정책이라는 이유를 내세워 축소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2024년 말 초고령사회에 진입했는데 노인 빈곤율과 자살률은 OECD 평균보다 압도적으로 높으며 노인 혐오도 심해지고 있다. 혼인과 출생률도 떨어져 노후에 의지할 가족이 없는 사람도 증가할 것이며, 장애인 인권과 건강보험 보장성도 퇴보 중이다. 그러니 늙고 병들었을 때, 존엄하게 살 방법이 보이지 않는 암담함에 안락사를 요구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이런 여론에 기대어 안락사를 합법화하려는 구체적인 움직임이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지금도 부실한 호스피스 돌봄이 더 축소되면 안락사는 자유 의지를 최대한 발휘한 결과로서 존엄한 죽음이 아니라 사회적 타살일 뿐이다.
가톨릭교회는 「안락사에 관한 선언(1980년)」과 「생명의 복음(1995년)」 등 여러 문헌을 통해 안락사 반대의 뜻을 표명한 바 있다. 「안락사에 관한 선언」은 죽여달라는 환자들의 간청은 안락사에 대한 진심 어린 요청이 아니라, 고통과 죽음이라는 운명에 홀로 남겨진 사람이 도움과 애정을 구하는 고뇌에 찬 간원이며 환자에게 의료적 돌봄뿐 아니라 사랑과 온정이 주어져야 함을 강조한다.
「생명의 복음」은 생산성과 효율성을 인간 존엄성보다 우선시하는 ‘죽음의 문화’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장애인과 환자·노인은 가족과 사회에 부담되는 무가치한 존재로 여겨지고 있음을 밝힌다. 이에 환자는 모든 의미와 희망을 잃은 채 좌절하게 되고, 이들을 보고 느끼는 그릇된 동정심과 자신도 같은 처지가 될 수 있다는 다수의 불안에 기대어 개인의 권리 보장, 자유의 승리라는 미명 아래 안락사가 효율성 추구의 도구로 정당화되고 있음을 지적한다.
존엄한 삶 없이 존엄한 죽음이 있을 리 없기에, 우리는 죽을 권리가 아니라 존엄하게 살 권리를 추구해야 한다. 모든 인간은 생의 시작과 마무리 단계에서 누군가의 돌봄이 있어야 하며 그러한 태생적 한계를 공동체를 이룸으로써 극복해왔다.
「생명의 복음」도 죽음의 문화를 극복할 원리로 연대와 정의를 제시했다. 효율성이나 수익성이 아니라 연대와 정의를 길잡이 삼아 누구나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을 마련하고, 한정된 재화를 일부의 삶의 질 향상보다는 만인이 존엄하게 살 권리 증진에 사용할 방법을 찾아가야 할 것이다.
임선희 마리아(가톨릭대 생명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