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직 현장에서] 교도소, 정화와 성찰의 공간

(가톨릭평화신문)


“저에게 감옥은 삭막한 광야이면서 배움과 깨달음의 장소입니다.” 30년 수용생활을 이어온 한 형제의 고백입니다. 감옥은 누군가에게는 단순히 형을 치르는 공간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가치에 눈을 뜨고 자신을 성찰하는 배움의 공간이 되기도 합니다.

수용생활은 분명 광야입니다. 대다수 수형자는 생각보다 좁고 열악한 환경에서 많은 이들과 함께 생활합니다. 범죄의 경중도, 사회적 배경도, 성격도, 기질도, 나이도 제각각인 사람들이 심지어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분들과 한 공간에 수용됩니다. 분명 고통의 시간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생각하는 적막한 느낌의 광야는 결코 아닙니다. 성경에서도 광야는 단순히 고통의 공간만이 아닌, 정화의 자리였음을 저는 기억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율법을 받았고,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기도와 단식을 통해 사명을 다지셨듯이, 감옥의 시간도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삶을 준비하는 여정이 될 수 있습니다.

물론 모든 수용자가 이런 성찰의 길에 오르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이들은 억울함과 분노 속에 적개심을 키우고, 또 어떤 이들은 불필요한 자기 합리화 속에 무의미한 시간을 보내기도 합니다.

그래서 교정 사목자의 역할은 중요합니다. 그런데 요즘 들어 급격히 대두되는 ‘과밀 수용’ 문제는 이를 더욱 어렵게 합니다. 현재 교정시설 평균 수용률은 130%이며, 높은 곳은 150%가 넘어가는 현실입니다. 물론 강화된 ‘열등 처우의 원칙’(기결수용자는 자유인의 최저 수준 이하의 처우)을 주장하며 응보적 정의를 주장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과밀 수용은 오히려 재범 가능성을 높인다는 연구 결과가 보고되고 있습니다.

교정 당국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으며 더욱 나은 교정·교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저 역시 다양한 활동과 공동체적 경험 그리고 지원사업을 통해 부족한 환경에 매몰되지 않도록 노력합니다. ‘자신만의 시간’을 살아가는 수용자들에게 진정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 고민하는 요즘입니다.

수원교구 교정사목위 부위원장 유정수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