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단상] 세리의 기도에 대한 묵상

(가톨릭평화신문)


“그러나 세리는 멀찍이 서서 하늘을 향하여 눈을 들 엄두도 내지 못하고 가슴을 치며 말하였다. ‘오, 하느님! 이 죄인을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루카 18,13)

세리와 바리사이의 기도에서, 세리가 “저는 죄인입니다. 자비를 베푸소서”라고 드리는 기도가 우리에게 주는 가르침은 하느님 앞에서 우리가 취해야 할 겸손하고 정직한 모습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의식하지 못한 채 너무나 자주 바리사이처럼 살고 있음을 성찰합니다.

그 성찰을 통해 인간이 가장 주의해야 하며 범하기 쉬운 오류가 있다면 첫째, 자신이 선하다는 확신입니다. 이런 경우에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잘못된 신념으로 교만해짐은 물론이고, 자신을 객관적으로 성찰할 수 없게 됩니다. 따라서 의인이라는 확신 때문에 이루어지는 행위는 통제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너무 많은 경우가 여기에 해당할 것입니다. 무슬림들·이스라엘 등 많은 국가와 단체들, 개인들이 적과 아군만이 존재하는 이분법으로 진영을 갈라놓고, 정의라는 이름으로 폭력을 행사하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사랑과 연민이 존재할 수 없습니다.

둘째, 자신이 우월하다는 오만에서 저지르는 오류입니다. 이 또한 자연과 인간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요인입니다. 우리는 때때로 자연스럽게 타인을 판단하고 있으며 소통하고 나누는 것이 아니라 일방적으로 가르치고 있을 때가 있습니다. 그리하여 이웃들에게 자신도 인지하지 못하고 상처를 주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이 보시기에 얼마나 가증스러울지 깊이 반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셋째, 자신에 대한 지나친 자기애, 자기 연민의 경우에도 진실이 왜곡되는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본연의 모습을 자각하지 못하고 외면해버려 자신 안에 갇혀버리는 것입니다. 이는 자기중심적 사고로 이전되어 타인에게 상처를 주는 원인이 될 것입니다. 언제나 자신에 대해서는 엄격하고 이웃에 대해서는 관대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그리스도 신앙인으로서 합당한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하느님 앞에서 하느님 사랑으로 창조된 피조물의 유한성을 인식하고 우리의 불완전함과 한계를 인식할 때, 우리는 하느님과 자연과 인간들에게 겸손하고 정직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하느님이 우리에게 은총의 선물로 내어주신 자연과 우리의 생명에 대하여 책임감을 가지고 공존하게 될 것입니다.

모든 그리스도 신앙인의 궁극적인 지향점은 예수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라 하느님 나라를 향하는 여정입니다. 하느님의 부르심으로 그 길을 가는데 각기 다른 역할을 부여받아 사제와 수도자·평신도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동일한 목적지를 향해 각기 다른 옷을 입고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신앙인의 삶은 개인적인 삶이 아니라 신앙 공동체에서의 삶입니다. 그 신앙 공동체는 형제들과 동행하며, 수고하고, 희망과 기쁨과 슬픔·고통·평화를 함께 나누는 공동체입니다. 자기 형제와 고통받는 이웃은 외면하고 하느님만 찾는 사람의 영성은 감히 가짜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과 맺는 관계에서 이웃과의 사랑이 중요함을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은 자기 나름대로 하느님을 이해하거나 본인 자신이 최고의 신앙인이라고 착각할 위험성이 있습니다. 우리 교회 공동체는 완전한 존재들로 구성된 공동체가 아니고, 보잘것없는 사람들로 이루어진 공동체입니다. 무식하고 미숙하고 한계가 많고 결점이 많고, 죄 많은 사람을 받아주어 용서하고 화해하는 자비가 없다면 공동체는 존재하지 못할 것입니다. 세상 속에서 고통받고 소외된 사람들과 소통하고 아픔을 함께 나누는 것보다 복음적인 것이 또 어디에 있겠습니까?

 

김영수(루치오, 서강대  신학연구소 선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