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만 가지 가능성 중 선택한 이름

(가톨릭신문)

9월 11일 서울 동자동 가톨릭사랑평화의집에서 열린 가수 임영웅 팬클럽 ‘영웅시대밴드’ 나눔 모임의 쪽방촌 도시락 조리·배달 봉사 현장. 회원들은 어떤 원동력으로 5년 이상 시설에서 봉사하며 1억 원 넘게 기부해 왔을까. 그들은 답했다. “무명 때부터 선행해 온 임 씨를, 같은 실천으로 응원하는 마음뿐”이라고.


이렇게 사랑에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이름을 붙인 사람들도 있지만 ‘절박함’이라는 이름을 붙인 이들도 있었다. 중증 발달장애인 가족·보호자들이었다. 사단법인 장애인거주시설이용자 부모회가 ‘탈시설지원법’ 제정 즉각 중단을 촉구하며 9월 9일 국회 앞에서 연 집회에 그들이 있었다.


한 참가자가 낭송한 자작시에는, 타인의 도움 없이는 일상생활조차 힘든 자녀를 탈시설 위기로부터 지켜내고자 매달리는 부모의 ‘절박함’이 얼룩져 있었다. “나는 거름 없는 자리에 심어진 나무, 썩어 가는 아픈 열매를 바라보며 재까지 거름 되어 모든 걸 주는 나무”라고….


지금도 세상에는 마실 물조차 빼앗긴 난민들이, 극한의 갈증에 치받친 나머지 오염된 흙탕물을 절망과 함께 삼키고 있다. 우리는 그걸 다 알면서도 방관하는 부조리한 세상에서도, 무력한 현실에 무너진 서로를 어떻게든 일으켜 세우고자 사랑에 저마다 의미를 불어넣어 행하고, 의지를 다져 살아간다.


선각자나 위인, 가족이나 벗이라는 이름까지. 인류는 각자 살아가는 현실에 따라 서로 다른 이름으로 사랑을 부른다. 그 수만 가지 가능성 중 우리는 ‘그리스도’라는 이름을 선택해 교회를 이뤘다. 자의로든 타의로든 그 일원이 된 우리는 이웃에게 목숨까지도 내어주는 ‘그리스도’를 과연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박주현 기자 ogoya@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