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알 하나] 마음 속 응어리

(가톨릭신문)

그늘진 곳에 뭉친 눈은 쉽사리 녹지 않습니다. 봄바람이 부는 3월에도 사람의 발길이 잘 닿지 않는 곳에 쓸쓸히 남겨진 그 눈 무더기는 우리 삶에 응어리진 마음들을 떠올리게 합니다. 상처받고 아픈 마음, 시련과 고통을 벗어나고 싶은 애절한 마음, 나를 사랑하지 못하는 어두운 마음 등이 떠오릅니다.


봄바람에 설레는 사람도 있겠지만, 누군가는 봄바람 속에서 녹지 않는 눈을 보고 슬퍼하는 사람도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그 눈 무더기는 어느샌가 사라져 버립니다. 밤사이 봄비라도 내리면 버티질 못하고 비와 함께 녹아내려 땅으로 흘러갑니다. 우리의 응어리진 마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더 따듯한 공기와 더 따듯한 봄비가 그 눈들을 다 녹이듯이 하느님은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셔서 내 마음이 다시 새로워질 수 있도록 변함없는 사랑을 다양하게 보내주십니다. 필리피서 1장 6절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여러분 가운데에서 좋은 일을 시작하신 분께서 그리스도 예수님의 날까지 그 일을 완성하시리라고 나는 확신합니다.”


곧 우리가 주님께 대한 희망을 잃지 않고 내 마음의 응어리만 바라보지 않는다면, 내 주변을 가득 채우고 있는 하느님의 사랑을 체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응어리가 사라지고 사랑이 남은 그 자리를 통해 우리는 내 삶을 다시금 긍정하고 불어오는 봄바람을 즐길 수 있습니다. 내 삶의 시련이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하느님의 사랑보다 더 클 수는 없습니다. 그분께서 우리 안에 좋은 일을 완성하시고자 함께 하십니다.


별생각 없이 읽은 성경 구절 한 대목이 당신에게 상처가 된 말을 없애줄 때도 있을 것입니다. 무심코 들린 성당에서 모르는 누군가에게 건넨 인사가 그 사람에게는 오늘 하루 들었던 말 중에 가장 따듯한 말일지도 모릅니다. 모르는 누군가를 위해 했던 기도는 그 사람이 살아갈 이유가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연약하기 짝이 없는 눈송이가 그늘진 곳에 뭉쳐 녹지 않듯이, 누군가 가볍게 던진 말들이 내 안의 큰 설움이 된 것처럼, 우리가 하느님을 통해 행한 작은 선행과 기도는 누군가 삶의 가장 튼튼한 버팀목이 될지도 모릅니다. 나쁜 것만이 우리 삶에 오래 남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주위를 둘러보면 생각보다 우리들의 작은 도움과 기도가 필요한 곳이 많습니다. 우리의 작은 움직임들이 그들의 마음속 응어리를 녹이는 하느님 사랑의 증거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작은 사랑들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사회입니다. 우리라는 개념보다 ‘나’라는 가치가 지나치게 우선되고, 포용과 수용보다 배척과 미움이 너무나 자연스러운 오늘날 사회에서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기 위해선 작은 사랑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사랑은 언제까지나 스러지지 않습니다.”(1코린 13,8)


봄의 따스함을 이 땅에 사는 모두 함께 느낄 수 있도록 노력하면 어떨까요?



글 _ 김영복 리카르도 신부(2027 WYD 수원교구대회 조직위원회 사무국 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