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원된 파리 노트르담 주교좌성당. 2019년 화재 후 5년의 복원 작업을 끝내고 2024년 12월 8일 재개관했다. 전 세계 150개국에서 약 1조 2724억 원을 지원하였으며, 총 1조 528억 원이 복원에 투입되었다. 지붕 부분은 아직 공사 중이다.
파리의 심장부, 센강의 시테섬에 자리한 노트르담 대성당은 에펠탑·루브르박물관과 더불어 파리 관광객들이 꼭 방문하는 명소입니다. 프랑스어로 ‘노트르담’은 ‘우리의 귀부인’이란 뜻으로,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은 성모님에게 봉헌된 파리대교구의 주교좌 성당입니다.
2019년 4월 15일 원인을 알 수 없는 화재로 성당이 불타는 장면을 전 세계가 실시간으로 지켜봤습니다. 그런 노트르담 대성당이 2024년 12월 8일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에 신자들의 품으로 돌아왔습니다. 대성당의 주보이신 성모님의 전구로 다시 일어섰기에 성모님에게 다시 봉헌한 겁니다.
남쪽 익랑의 장미창과 새로 복원한 천장의 중앙 종석. 서쪽 정면의 장미창과 남·북 익랑의 거대한 원형 창도 구조적 손상 없이 기적적으로 살아남았다. 옛 모습을 충실하게 복원하는 동시에 현대적 요소를 선별적으로 도입해 850여 년에 걸친 신앙과 예술의 층위를 고스란히 간직했다.
새로운 빛의 공간으로 탄생
지하철역에서 나와 센강을 따라 걸어가면 서서히 대성당이 나타납니다. 화재 후 전통적인 방식으로 복원된 뾰족한 첨탑과 외벽의 장미창은 상상 이상으로 웅장합니다. 한 폭의 수채화처럼 강물에 일렁거리는 노트르담 모습을 감상하다 보면 이내 북적이는 성당 앞에 다다릅니다.
깨끗하게 단장된 ‘최후의 심판’ 포털을 지나 성당에 들어서면 예전과 미묘하게 달라진 느낌을 받습니다. 전에 가보신 분은 낯설다고 여길 수도 있습니다. 스테인드글라스 창으로 들어온 빛과 새로운 조명으로 여느 고딕 성당보다 내부 공간이 훨씬 환하고 깨끗합니다. 복원하면서 본래의 유리 색감을 되찾았고, 천장과 벽면에서 그을음과 먼지를 제거해 석재의 원래 톤이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중세에 성당이 완공됐을 때 파리 시민의 첫인상이 이렇지 않았을까요. 인파의 웅성거림과 스마트폰의 셔터 소리를 잠시 잊고 고색창연한 빛 속에서 수백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봅니다.
주제단의 제대 십자가와 피에타상. 첨탑 아래 볼트 부분이 기존 직사각형 청동 제대 위로 무너져 내렸지만, 십자가와 피에타상은 손상이 없었다. 기욤 바르데의 새 청동 제대 표면에 감실이 삽입됐고, 피에타상 아래에도 감실이 추가로 설치됐다.
거룩한 일상의 순례지
파리의 모리스 드 쉴리 주교(재임 1160~1196)는 기존의 낡고 작은 성당을 대신해 유럽 왕들의 본당이라 불릴 만한 웅장한 성당을 지어 이곳을 가톨릭 신앙의 중심지로 만들고자 했습니다. 1163년 루이 7세와 알렉산데르 3세 교황이 참석한 가운데 대성당의 초석이 놓였는데, 실제 이곳을 시작으로 랭스·아미앵·루앙 등지에 고딕 대성당을 짓기 시작했으니 그 바람이 어느 정도 이루어진 셈입니다.
중세 파리교구에는 나름의 사정이 있었습니다. 전통적으로 파리대교구의 교구장은 서울대교구처럼 재임 중 추기경의 직위를 받는 자리입니다. 하지만 중세까지만 해도 파리는 상스대교구에 속한 일반 교구였고, 파리교구장은 왕에게 봉토를 받은 제후 주교가 아니어서 랭스 대성당에서 치르는 프랑스 왕의 대관식에 참석할 자격조차 없었습니다. 파리가 왕도였지만, 교회 안팎에서 위상은 그렇지 못했던 겁니다.
이런 판도는 14~16세기 백년 전쟁·위그노 전쟁을 거치면서 바뀝니다. 1593년 앙리 4세는 “파리는 미사를 드려서라도 가질 가치가 있다”라며, 가톨릭이 다수이던 파리로 입성해 이듬해 왕위에 오릅니다. 이후 루이 13세·루이 14세 때 절대 왕정이 확립되면서 파리와 파리교구의 입지가 공고해집니다. 1622년 그레고리오 15세 교황에 의해 대교구로 승격되면서 주요 국가 행사도 노트르담에서 치렀지요.
노트르담은 자연스럽게 파리 시민의 ‘거룩한 일상’의 순례지로 거듭나게 됩니다. 특히 성모 신심이 깊어지면서 대림 시기나 성모 축일에 열린 빛의 예식에 많은 시민이 참례했습니다. 하지만 노트르담이 지금처럼 유명하게 된 것은 역설적으로 교회가 박해받던 프랑스 혁명 이후부터입니다. 나폴레옹이 비오 7세 교황과 ‘정교협약’을 맺은 후 왕실 성당인 생트샤펠에 있던 예수님의 가시면류관과 성 루이 9세의 튜니카 등 성유물을 노트르담으로 옮겼기 때문입니다. 물론 빅토르 위고의 소설 ‘파리의 노트르담’도 큰 몫을 했습니다.
가시면류관과 성모 칠고 소성당의 성물함. 성 루이 9세가 재정난이 시달리던 라틴 제국의 보두앵 2세 황제에게 당시 프랑스 왕국 예산의 절반에 달하는 거금을 치르고 가시면류관을 사들였다. 실뱅 뒤뷔송은 금도금 황동 격자를 이용해 알루미늄 헤일로에 유리블록을 설치해 가시면류관 성유물함을 만들었다. 금요일마다 성유물함 중앙에 전시된 가시관을 친견할 수 있다.
성당 입구 중앙의 세례대. 프랑스 기욤 바르데가 제대와 함께 새롭게 디자인한 것으로, 단순하면서도 성스럽고 묵직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1500개 의자는 프랑스 솔로뉴산 참나무로 만들었다.
복음화의 멀티미디어 공간
노트르담은 단순히 복원을 넘어 복음화라는 멀티미디어 공간으로 변모했습니다. 대성당을 순례하면서 구약에서 신약으로 이어지는 구원사를 체험하도록 공간이 재구성됐고, 이에 맞춰 관람 동선도 예전과 달라졌습니다.
우리의 순례는 입구 중앙에 새롭게 자리한 청동 세례대에서 시작합니다. 이곳을 찾는 이들이 물의 세례로 하느님의 자녀가 되기를 바라는 상징이지요. 북측 측랑을 걸으면서 노아 소성당·아브라함 소성당 등에서 창세기부터 예언서까지 구약의 중요한 순간을 목격하게 됩니다. 구세주의 탄생까지 ‘약속의 길’을 걷는 영적 여정이지요. 소성당마다 서로 다른 나라 말로 쓰인 성경 구절이 전 세계에서 온 순례자를 하나로 묶습니다.
주제단으로 다가가면 조명에 은은히 빛나는 단순한 형태의 새로운 청동 제대가 눈에 들어옵니다. 2019년 화재 당시 첨탑이 무너져내린 공간이지만, 피에타상과 그 뒤의 대형 황금 십자가는 기적처럼 무사히 남아 잿빛 성당에 희망의 빛을 던져줬습니다. 그 뒤에는 예수님이 쓰신 가시면류관을 모신 원형의 성유물함이 있어, 성체의 현존·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성모의 통고를 묵상할 수 있습니다.
남측 측랑은 파리의 성인과 성령칠은을 주제로 한 길로 ‘성령의 길’이라 불립니다. 부활과 성령강림으로 신약의 은총을 체험하는 장소지요. 2026년 말 6개 소성당의 현대 스테인드글라스가 완공되면 다양한 인종·문화의 현대 교회가 성령 안에서 하나임을 더 잘 느낄 수 있을 겁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개관식에 보낸 서한에서 “그분의 사랑만이 새로운 인류를 탄생시킬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섬세하게 복원한 흔적이 성당 곳곳에 스며 있습니다. 일부 공간은 아직 미완성입니다만, 하느님의 섭리 안에서 인간의 회복력과 예술의 힘이 신앙으로 승화되고 있습니다.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의 부활은 우리 신앙의 이야기인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가장 어두운 순간이 가장 깊은 은총으로 가는 과정임을 묵상해 봅니다.
<순례 팁>
※ 지하철 4호선 시테역에서 가깝지만, 생미셸-노트르담역에서 내리는 것이 센강의 노트르담 풍광을 즐길 수 있다.
※ 노트르담 전례 : 주일 및 대축일 미사 8:30·10:00(그레고리오 성가)·11:30·18:00, 평일 미사 08:00·12:00·18:00, 성체조배 매주 목요일 18:45. 성 요셉 소성당과 위층 회랑에서 고해성사 10:00~ 12:00·14:00~16:00.(미사 참례에는 예약이 필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