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신앙] (27)삼손 옵션 (전성호 베르나르도, 경기 효명고 과학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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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8년 국제천문연맹(IAU)은 나라별로 다르게 사용하고 있는 별자리를 라틴어 이름으로 통일하고 88개로 확정했다. 여기에는 탄생 별자리라고 부르는 황도 12궁이 포함되어 있다. B.C. 4000년 무렵 시작된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바빌로니아인들은 지구를 중심으로 한 천구(天球) 상의 태양 궤도인 황도(黃道) 개념을 최초로 도입했으며 황도 주변 12개의 별자리를 황도 12궁으로 하여 1년을 이루는 12개월과 일치시켰다. 탄생 별자리는 태어난 날에 태양이 그 별자리를 지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에 생일에는 그 별자리를 볼 수 없으며 그 별자리가 태양의 위치와 정반대인 곳에 위치하는 6개월 전후에나 볼 수 있다. 4월 중순 밤 9시쯤에는 황도 12궁 중 봄철 별자리인 처녀자리(Virgo)가 동쪽 지평선에서 올라오며, 남쪽에는 사자자리(Leo)가 높이 떠 있고 서쪽에는 지평선을 향해 내려가는 겨울철 별자리인 게자리(Cancer)가 있다. 게자리 중심부에는 갈릴레이가 1609년에 망원경으로 최초로 관찰한 벌집 성단이 있다. 벌떼가 모인 벌집 모양을 닮은 이 성단은 최소 1000개 정도의 별들이 모인 산개성단으로 지구로부터 577광년 떨어져 있다.

밤하늘의 사자자리와 벌집 성단을 보고 있으면 구약 성경에 등장하는 괴력의 인물 삼손이 떠오른다. 삼손은 포도밭에서 만난 힘센 사자를 맨손으로 죽인 후 얼마 뒤 그 사자 사체에서 벌떼와 꿀을 발견하고는 그 꿀을 부모에게 갖다 준다.(판관 14,5-9) 삼손은 후에 필리스티아인들의 사주를 받은 들릴라에게 자기 힘의 원천이 머리카락에 있음을 털어놓았다가 필리스타인들에게 붙잡힌다. 그들은 삼손의 눈을 멀게 한 후 청동 사슬로 묶어 감옥에서 연자방아를 돌리게 하지만(판관 16,17-21) 삼손은 수많은 필리스타인들이 모인 자리에서 신전의 기둥을 무너뜨리고 결국 그들과 함께 죽는다.(판관 16,29-30)

이 이야기는 많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어 렘브란트와 루벤스에 의해 그림으로, 영국 시인 존 밀턴에 의해 비극적 장편 희곡으로 극화되었다. 프랑스 작곡가 카미유 생상스는 1877년 ‘삼손과 들릴라’라는 오페라를 작곡했는데 특히 2막 들릴라의 아리아 ‘그대 음성에 내 마음 열리고’는 세계적인 성악가들이 애창할 정도로 아름다운 선율의 곡이다. 여행용 가방 브랜드인 쌤소나이트(Samsonite)도 삼손 이름에서 영감을 얻은 경우다.

1991년 미국 언론인 시모어 허쉬는 「삼손 옵션(The Samson Option)」이란 책에서 이스라엘이 아랍 국가들과의 전쟁에서 패할 경우 자체 핵무기를 동원해 아랍 국가들과 공멸한다는 전략을 소개했는데, 이는 삼손이 성전의 기둥을 부수고 지붕을 무너뜨려 자신과 수천 명의 필리스티아인들을 죽인 것과 같은 맥락이다.

삼손 이야기의 교훈은 무엇일까? 삼손은 어떤 부정한 것도 먹지 말라는 하느님과의 약속을 어기고 사자 사체에서 나온 꿀을 먹었으며 자신의 힘의 근원이 하느님으로부터가 아니라 자신에게서 나온 것인 양 교만했다. 약속을 어기지 않고 교만해지지 않는 것, 단순하지만 이것이 삼손 이야기의 교훈이다. 특히 오늘날 우리 사회의 권력자들은 힘의 근원이 자신에게서 나오는 줄 아는 교만함에서 깨어나 공멸(共滅)의 삼손 옵션을 택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전성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