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등교 길

(가톨릭신문)

 


첫 등교 길 


Indonesia, 2013.


 


오늘은 아이가 처음 학교에 가는 날.


이른 아침 밭에 나간 엄마 아빠를 대신해


할머니는 서둘러 밥을 지어 먹이고


깨끗이 빨아 놓은 옷을 다려 입히고


동네 형아가 물려준 책가방을 메어준다.


아이는 첫 등교 길이 낯설고 떨려서


주눅든 어깨로 울먹임을 삼켜보지만


할머니는 엄정한 맨발의 걸음으로


아침 안개를 가르며 앞장 서 걷는다.


내일부터 아이는 혼자서 이 길을 가야 한다.


새로운 세계로 가는 길은 늘 떨리지만


가야 하는 길은 가야 한다고,


할머니는 속정을 감추며 앞만 보며 걷는다.


 


- 박노해(가스파르) 사진 에세이 「산빛」 수록작


글·사진 _ 박노해 가스파르
※ 서울 종로구 통의동 ‘라 카페 갤러리’(02-379-1975)에서 박노해 시인 상설 사진전을 무료로 감상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