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 계획 안에 있는 인간사랑-몸 신학 교리] 금욕의 ‘우위성’, 혼인에 대한 평가 아니다

(가톨릭신문)

신앙 안에서 동정 독신은 근본적으로 살을 취한 말씀, 곧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의 문제로 수렴된다. 그리스도의 사랑은 추상적이지 않으며, 특정되고 구체적인 특성을 지닌다. 성령 안에서 체험되며, 그 체험은 자신 밖으로 분출되어 타자에게 나아가고, 이때 전파되는 형식은 인격적이다.


동정 독신 성소는 자발적이고 초자연적인 특징이 강하게 부여되지만, 혼인 성소나 세상에서 독신자로 살아가는 이들과 계급이나 등급, 단계로 구별되지 않는다. 모든 인간의 본성인 ‘혼인성’이 결혼한 이에게는 자녀 출산으로 이어지고 동정 독신을 선택한 이에게는 영적 출산으로 이어질 때, 그 성소의 빛이 사람과 세상에 초자연적인 특징, 즉 하늘나라를 위한 그리스도와의 혼인 관계에 특별함을 드러나게 한다. 그러므로 성소 자체가 우위에 있지 않다. 


“하느님의 나라를 위한 동정 또는 독신은 혼인의 존엄성을 위배하지 않을 뿐 아니라, 그것을 전제하고 강화합니다. 혼인과 동정 또는 독신은 하느님과 사람들의 계약의 신비를 표현하고 살아가는 두 가지 방법입니다. 혼인이 존중되지 않으면, 성화된 동정이나 독신이 존재할 수 없습니다. 인간의 성(性)이 창조주가 주신 중대한 가치로 인정되지 않으면, 하느님의 나라를 위한 성의 포기도 의미를 상실합니다.”(「가정 공동체」 16항)


동정 독신은 인간 본성에서 가장 탁월하게 축복받은 부분에 그 근본을 두고 금욕을 받아들인다. 이는 동정 독신이 인간의 본성적 특징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이 함의하고 있는 초월적 의미를 탁월하게 드러내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성소의 특징은 넘치는 사랑에서 기인했고, ‘하느님 사랑에 대한 사랑’의 응답으로 교환된다. 


본성을 파괴하거나 보류한 것도 아니며, 부부 사랑의 신비에 ‘반대되는’ 것도 아니다. 초자연적 사랑의 모습이 자연적 모습으로, 자신의 지향에 의해 변화·성숙의 여정을 거쳐 그 완성에 도달한다. 그렇기에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교리서 본문에서 초기 양성과 지속적인 양성을 강조했다.


동정 독신 서원을 한 후에도 자신의 남성성과 여성성의 특징은 없어지지 않으며 성적 욕망도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성소로 지키는 독신에서 인간의 본능적 욕구가 단순히 인간적 어려움에 머물지 않고, 성의 본질적 의미를 알고 살아내야 하는 것이다. 


이는 성의 목표(목적), 일치(한몸)를 미리 보여주는 것으로 종말론적 의미를 드러내는 것이고, ‘하늘나라’ 증거라는 적극적 의미이기도 하다. 만약 이러한 동기와 지향이 희미해지면 풍랑에 휘둘린다. 욕구에 든 참된 의미를 안다면, 출구도 정확히 찾을 수 있다.


욕망은 인간성의 본질적 표지이고 우리가 하느님께 속한다는 표지다. 뿌리를 뽑거나 무감각해져야 하는 것이 아니라, 욕망의 모든 대상을 하느님과의 참된 관계에 맞추어 질서 잡는 일이 중요하다. 이는 우리 마음이 진정한 자유를 얻도록 하는 것이다. 또 어둠에 빛을 비추어 다시 바라볼 수 있는 앎도 동반되어야 한다.


자유를 얻으면 강해지고 빛을 받으면 생명을 얻어 성장, 변화한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근본적인 질문을 해야 한다. ‘어찌하여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식욕과 성욕이라는 욕구를 허락하셨는가? 독신 동정 서원을 했음에도 왜 성적 본능을 거두어 가시지 않는가?’ 배고픔과 성적 충동은 단지 충족해야 할 욕구에만 머물지 않고, 우리를 더욱 위대하고 충만(행복)한 삶, 거룩한 삶으로 이끌어 준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리스도와의 관계에서 끊임없이 원일치를 갈망하는 원고독을 온몸으로 살고, 십자가와 부활이 동정성의 정점에 이르게 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글 _ 김혜숙 막시마(그리스도의 왕직 재속 선교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