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노 성인. 굿뉴스
로마노 성인은 4세기 말경 프랑스 부르고뉴 지방에서 태어난 갈로-로망 출신 사람입니다. 젊은 나이에 은수생활을 실천하기 위해 가족을 떠나 리옹 근처 에나이 수도원으로 가서 사비누스 수도원장의 지도를 받았습니다.
어느 정도 교육을 받은 후 은수생활을 실천하기에 적합한 장소를 찾았고, 스위스와 프랑스 국경지대에 있는 쥐라산 숲 속으로 들어갑니다. 그는 요한 카시아노 성인이 쓴 「공주 수도생활과 여덟 가지 악습들에 대한 제도서」와 「교부들의 담화집」, 그리고 몇 가지 도구와 종자만 가지고 가서 움막을 짓고 기도와 독서에 열중하며 땅을 일구었습니다. 그러나 사냥꾼들 때문에 그의 첫 번째 은둔소는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그즈음 로마노의 동생 루피치노 성인이 은수생활에 함께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들 형제는 두 강이 흐르고 절벽으로 둘러싸인 오늘날의 생클로드인 콘다트에서 은수생활을 시작했는데, 그들의 경건한 삶에 대한 소문이 퍼지면서 많은 제자가 모여들면서 수도원을 세우게 됐습니다. 이 수도원이 바로 나중에 많은 이에게 유명해진 콘다트 수도원입니다. 로마노는 444년 아를의 성 힐라리오 주교에게 사제품을 받고 수도원장으로 임명됐습니다.
수도원에 모여드는 제자들을 더욱 받아들이기 위해 로마노 형제는 인근에 몇 개의 수도원을 더 세웠습니다. 형제는 수도자들을 조화롭게 지도했습니다. 여성 제자들도 몰려들게 되자 라 봄므에 수녀원을 설립했습니다. 이들이 설립한 수도원에서는 엄격한 규율을 지켜야 했습니다. 기도 시간 외에는 주로 노동으로 생활을 꾸려나가야 했고, 육식을 금하고 아픈 경우에만 우유와 달걀을 먹을 수 있었습니다. 루피치노는 형보다 더 엄격한 성격의 소유자로 절대 침대를 사용하지도, 포도주를 입에 대지도 않았다고 합니다.
로마노는 테반 군단이 순교한 스위스 남부 발레의 생모리스를 순례했는데, 길에서 만난 두 명의 나병 환자를 안아 치유하는 기적을 행했습니다. 그리고 제네바를 지나갈 때 소문을 듣고 나온 주교와 시민들로부터 열렬한 환영을 받아 놀랐다고 합니다. 로마노는 463년 2월 28일 선종해 라 봄므 수도원 성당에 묻혔습니다. 로마노가 선종한 뒤에는 루피치노가 수도원장을 맡아 480년까지 이끌었다고 합니다.
옛 「로마 순교록」과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 모두 2월 28일 목록에서 로마노에 대해, 그리고 3월 21일 목록에서 루피치노에 대해 기록하고 있습니다. 특히 로마노는 “쥐라산맥에 세운 수도원의 대수도원장으로서 고대 수도승들의 모범을 본받아 은수자로 살다가 나중에 많은 수도자의 아버지가 되었다”고 기록했고, 루피치노는 “로마노와 함께 수도원 생활에 활력을 불어넣었다”고 적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