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를 열렬히 사랑한 중세 스콜라 시대의 위대한 성인 토마스 아퀴나스(1224/5~1274). 성인은 다섯 살 무렵부터 몬테카시노의 베네딕토 수도원에서 생활하지만, 열다섯 살인 1239년 나폴리 대학에서 공부하게 된다.
나폴리 시절 성인이 마주하게 된 두 가지 만남은 진리를 사랑하는 그에게 앞으로의 삶을 한껏 펼쳐 줄 만남이었다. 그 두 만남은 진리를 열렬히 탐구하고 관상하며 그렇게 깨닫게 된 것을 많은 이에게 전하는, 그의 사도적 소명을 일깨워주는 만남이었다. 첫째는 탁발 수도회인 도미니코 수도회와의 만남이었고, 둘째는 바로 고대 그리스 철학자인 아리스토텔레스 철학과의 만남이었다.
12세기 이후 유럽에 본격 등장하게 된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은 당시 그리스도교 철학에의 새로운 흐름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 「윤리학」 등 책들이 아랍 철학자들에 의해 번역돼 유럽에 소개되었고, 당시 스콜라 학자들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에 다양한 관심을 보였다.
우리 눈에 보이는 감각적 사물들을 있는 그대로 보고, 그 사물들에 담긴 진리를 파악하려 시도한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은 인간 이성과 경험을 통해 세상을 이해하고, 인간 존재가 지닌 궁극적 의미와 목적을 찾고자 했다. 이러한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의 여러 요소들이 그리스도교 신앙의 진리, 즉 하느님 진리를 인간 언어로 더욱 효과적으로 탐구하고 전달하는 데 적지 않은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을 당시 여러 스콜라 학자들은 알게 되었다.
하지만 교부들로부터 1000년 넘게 이어져 온 중세 그리스도교의 전통적 가르침이, 고대 그리스 철학이자 세상적(하느님에 대한 언급이 없는) 학문인 아리스토텔레스 철학과 어떻게 조화를 이룰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수많은 엇갈린 의견들이 존재했다. 중세 그리스도교는 하느님 진리에 근거해 확고한 교의를 세워놓았다. 여기에 새롭게 등장한 ‘세상의 학문’인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의 유행이 교회 입장에서는 적지 않은 우려가 되기도 했다. 이를 ‘전통과 새로움의 만남’ 혹은 ‘전통적인 문화에 혜성처럼(?) 등장한 신유행의 문화와의 충돌’이라 이야기하면 조금 과장된 표현일까.
12세기 이후 조우하게 된 중세 그리스도교의 전통적 세계관과 아리스토텔레스 세계관의 만남은 이후 그리스도교 신학과 철학의 발전과 전개에 커다란 신선함을 줄 예정이었다. 새로운 누군가와 혹은 무엇과의 만남은 우리에게 신선한 자극을 준다. 때로 새로움과의 만남이 다소 불편함과 거북함을 가져다주기도 하고, 크고 작은 갈등을 선사하기도 하지만, 그러한 자극이 우리에게 도움이 된다면 기쁜 마음으로 그 신선한 자극을 받아들여야 한다. 더구나 그 새로운 만남이 진리를 추구하는 우리 삶에 아주 작은 도움이라도 된다면 이는 더할 나위 없는 기쁨일 것이다.
하느님의 진리를 평생토록 열렬히 사랑한 성인
분명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은 하느님 진리를 탐구하고 전달하는 데 효과적인 도구가 될 만한 자격을 갖추고 있었다. 이를 가장 잘 알고 있었고, 이를 통해 하느님 진리 탐구와 전달의 탁월함을 보여준 이가 바로 토마스 아퀴나스다.
하느님 진리를 평생토록 열렬히 사랑한 성인에게 중요했던 것은 바로 하느님 진리였다. 진리를 탐구하고 이를 환히 비추어, 많은 이에게 이 진리의 빛을 조금이라도 더 전달해주는 것이 성인이 평생토록 응답했던 사도적 소명이었다. 이 소명의 수행에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은 좋은 도구였다.
성인의 많은 저서들, 특히 그의 신학적 가르침이 집대성된 「신학대전」(Summa Theologiae)에 아리스토텔레스가 자주 언급된다. 하지만 성인에게 중요했던 것은 아리스토텔레스 철학 자체가 아니라, 그 철학을 도구로 탐구하고 밝히고자 했던 하느님 진리였다. 성인은 하느님 진리를 위해 기꺼이 세상의 학문과 대화했던 것이다.
세상의 학문들이 이야기하는 것 중 진리 탐구에 부합하는 것들은 좋은 도구로 받아들이고, 좋은 도구와 그렇지 않은 도구를 분별하기 위해 성인은 세상의 학문들을 깊이 연구했다. 연구 목적은 언제나 하느님 진리였다.
하느님 진리 탐구에 대한 성인의 자세는 오늘날 수많은 신학도들의 모범이 된다. 오늘날 연구되는 심리학·사회학 등 인간 개인 그리고 인간이 이루는 공동체인 사회에 관한 여러 학문들은 하느님의 모상대로 창조된 인간과 이들의 공동체인 사회 안에 깃든 하느님 진리를 이해하고 탐구하는 데 크고 작은 도움을 줄 것이다. 하느님 진리가 오늘날을 살아가는 사람들 마음 안에서 더욱 생생히 울릴 수 있도록, 세상 학문들과의 대화는 더욱 활발히, 더욱 기쁜 마음으로 이뤄져야 할 것이다.
입회 1년 뒤 파리에서 스승 알베르토 성인 만나
나폴리에서의 두 가지 만남, 곧 도미니코 수도회와의 만남과 아리스토텔레스 철학과의 만남은 그저 스쳐 가는 만남이 아니었다. 도미니코 수도회와의 만남으로 성인은 열아홉 혹은 스무 살이 되던 1244년 도미니코 수도회에 입회하게 되고, 이후 평생을 도미니칸 수도자로 살아가게 된다.
아리스토텔레스 철학과의 만남은 이후 성인이 파리에서 대 알베르토 성인을 만나면서 한층 더 탄탄해진다. 그리스도교의 또 하나의 위대한 보물이며, 토마스 아퀴나스의 스승이기도 한 알베르토 성인은 도미니코 수도회 수도자였으며,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에 정통한 학자였다.
새로운 만남은 늘 신선한 자극이다. 도미니코 수도회에 입회하고 1년 뒤 파리에서 알베르토 성인을 만나게 되는 토마스 아퀴나스에게 하느님께서는 또 다른 새로운 만남들을 준비하셨다. 물론 그 만남은 하느님 진리를 열렬히 사랑한 성인의 사도적 소명을 위한 만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