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립·분열 대신 화해·대화로 이루는 평화

(가톨릭평화신문)



악마가 광야에서 예수님께 행한 세 번째 유혹은 세상의 모든 나라와 영광에 관한 것이었다. 예수님께서 답하신다. “사탄아, 물러가라.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주 너의 하느님께 경배하고 그분만을 섬겨라.’”(마태 4,10)

한 지인이 현 시국에 대해 걱정하면서 탄핵 정국이 어떻게 될 것인지 물으셨다. 옆에 있던 한 동료 사제가 답했다. “하느님께서 바라시고 계획하시는 대로 다 잘될 거라 확신합니다.” 참으로 지혜로운 답변이었다.

현재 한국 사회는 극도의 분열과 갈등으로 갈라져 있고, 이는 고스란히 교회 안에도 자리하고 있다. 한편의 신자는 교회가 더 적극적으로 정치적·사회적 사안에 개입하고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고 하고, 다른 한편의 신자는 시국선언을 하는 사제단을 보며 교회를 떠날 결심을 하기도 한다. 지금 시국의 전개를 보고 교회는, 그리고 신자 개개인은 어떤 입장을 가져야 할까?

교회는 어떤 정당의 입장과 완전히 일치하지 않는다. 공공연히 어느 정당을 추종한다고 말하지도 않는다. 교회가 추구하는 것은 하느님 나라이기 때문이다. 하느님 나라라는 기준 앞에서 교회는 지상의 정치적·사회적 사안에 대해 입장을 표명하는 것이다.

신앙인은 어떤 정치적 입장을 기준에 두고 그에 따라 신앙을 선택하는 것이 아닌, 신앙의 눈으로 세상에 하느님 나라가 실현되기를 희망하며 복음을 위해 투신하는 사람이다. 만약 전자에 속한다면, 자신의 신앙에 대해 진지하게 되물을 필요가 있다.

이런 이야기가 있다. 가톨릭과 개신교 신자들이 축구시합을 하는데, 가톨릭 쪽에서 골을 넣으니 관중석에서 예수님께서 환호하신다. 이어서 개신교가 골을 넣으니 예수님께서 또 환호하신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어떤 관중이 “당신은 누구 편이요?”하고 물으니 예수님께서 “둘 다입니다”라고 답하셨다. 그랬더니 그 관중이 하는 말. “흥, 무신론자로군!”

예수님께서는 열두 사도단 안에 오늘날 소위 극좌와 극우에 해당하는 사람을 모두 뽑으셨다. 세리도 있었고, 정치적 혁명을 꿈꾸던 이도 있었다. 그들이 한데 어우러져 공동체를 이루며 살도록 배려하셨다. 진정한 평화는 내가 싫어하는 사람들을 제외한 채 나와 뜻을 같이 하는 나머지 사람들과만 이루는 것이 아니다. 나와 뜻이 다르고 생각이 다르다고 하여도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서로를 인정하고 존중하며 함께 살아갈 때 진정한 평화가 가능하다.

지금 우리 사회의 가장 큰 적은 대화나 화해를 거부하고 대립과 분열을 선동하며 서로를 헐뜯고 싸우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흐름에 편승하기보다 화합과 일치를 외치며 그러한 화합과 일치의 삶을 교회 공동체 안에서 몸소 살아야 할 것이다.

탄핵심판 선고 결과가 나의 뜻에 반대된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뜻을 잠시 접어두고 하느님 뜻이 어떤 것인지 헤아리며 하느님 나라 실현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 진정한 신앙인의 자세이다. 정의는 분명 이루어진다. 평화도 분명 실현될 것이다. 모두가 다 하느님의 크신 계획 안에서 이루어질 것이다. 거기까지 가기 위해 마주치는 시련은 마땅히 거쳐야 할 산고의 시간이다.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회개란 그동안의 갈등과 분열, 미움과 증오의 관계를 청산하고, 우리 모두 부족하고 연약한 사람임을 고백하며 화해와 일치의 길로 나아가기 위해 마음을 모아 기도하는 것이다.

우리 사회가 여전히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이유는 평화의 장인(匠人)들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 우리 신앙인이 갈등과 분열을 넘어 화해와 일치를 이루는 평화의 장인이 되어야 한다.





한민택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