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은 사랑의 한 표현이며 치유의 한 원리

(가톨릭평화신문)

우정은 일상에서 자주 듣는 친숙한 용어다. 우리 속담에 ‘친구 따라 강남 간다’(隨友適江南)라는 말이 있다. ‘친구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는 말도 있다. 이는 우정이 우리 자신의 사회적 정체성과 평가에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사마천(司馬遷, 기원전 145~86년경)은 「사기(史記)」의 ‘관안열전(管晏列傳)’에서 우정의 참된 모습을 시류나 시세에 편승하지 않고 항상 상대의 마음을 읽으며, 그 처지를 깊이 이해하는 공감적 태도로 보았다. 만약 이런 진정한 친구가 곁에 한 명이라도 있다면 아마 삶에서 오는 그 어떤 고통도 이겨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사회적 존재인 인간은 타인과의 관계를 통해 자기를 규정할 뿐 아니라 자기를 실현한다. 우정은 단순히 원활하고 원만한 관계를 위한 삶의 기술이 아니라 그 자체로 삶의 의미를 발견하고 방향을 설정해주는 삶의 구성 요소다. 더욱이 우정은 잘못된 관계로 인해 상처받은 우리 마음을 위로하고 치유하는 힘의 원천이기도 하다. 사실 삶을 견디지 못하고 포기하는 순간은 대부분 곁에 아무도 없다는 고립감과 외로움을 느낄 때이며, 이런 감정은 홀로 감당하기 힘든 바로 그 순간이기 때문이다.

우정은 사랑의 한 표현이다. 사랑이 치유의 근본 원리이듯 우정 역시 치유의 한 원리다. 존재 자체 혹은 하느님에게서 오는 초월적 사랑은 존재 긍정을 통해 모든 존재하는 것에 이미 깃들어 있으며, 그런 의미에서 사랑의 기본 원리는 ‘주는 것’에 앞서 ‘받음’에 있다. 사랑은 대가 없이 주어진 은총적 선물이며, 우리가 이를 이해하고 마음으로 느낄 수 있을 때 비로소 우리를 내적으로 충만하게 하는 힘의 원천이 된다.

우리는 이미 주어진 이 초월적 사랑을 종교적으로 무조건적이요 절대적인 아가페(αγ?πη)적 사랑이라고 부른다. 자기 존재의 당위성도 이러한 은총적인 아가페적 사랑에 근거한다. 정신적으로 건강한 삶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일상에서 항상 이런 존재 긍정의 힘인 사랑을 실제로 느낄 수 있어야만 한다. 이를 훈련하는 것이 철학상담의 목표 중 하나다.

우리는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우정을 통해 구체적으로 사랑을 주고받는다. 사랑과 관련해 플라톤(Platon, 기원전 428/7~348/7년경)이 「향연」에서 고상한 용어인 에로스(?ρος / ?ρως)를 강조한 것과 달리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기원전 384~322년)는 「윤리학」에서 일상의 용어인 우정(φιλ?α, 필리아)을 강조한다.

우정은 남녀노소, 부모와 자녀, 부부, 왕과 신하, 주인과 노예 등 모든 인간관계를 포괄하는 보편적인 관계 규정적 개념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우정을 사회적 존재인 인간이 살아가는 데 있어 반드시 추구해야 할 ‘덕’으로 간주하며, 우정의 본질이 형평성(균등성·유사성), 공동체성, 나눔(보답성)에 있음을 강조한다. 우정이 잘 형성되기 위해서는 유사한 사람들끼리 균등하게 어울리며, 함께 생활하고, 서로 주고받음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우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특별히 지혜로움이 필요하다.

상처를 주고받음이 아닌, 서로에게 위로가 되고 치유가 되는 진정한 우정을 나누기 위해서는 그 무엇보다 상호 고유한 인격을 존중하고, 그 고유함을 서로 주고받으며 변화될 수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