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 진리 탐구 이끌어줄 스승 알베르토를 만나다

(가톨릭평화신문)
토마스 아퀴나스 성인이 파리의 한 홀에서 다른 수도자들에게 자신이 탐구한 하느님 진리를 설교로 전하는 모습. 출처=Wikimedia Commons

도미니코 수도회 입회하려다 1년간 성에 감금

진리를 열렬히 사랑한 성인 토마스 아퀴나스(1224/5~1274). 하느님 진리를 많은 이에게 전하고자 하는 성인의 사도적 소명의 여정은 나폴리에서 젊은 시절 마주한 두 가지 만남, 곧 도미니코 수도회와의 만남과 아리스토텔레스 철학과의 만남으로 시작된다. 이제 그 여정은 파리로 가게 되는 그의 삶에서 꽃을 피우게 된다.

성인은 1244년 도미니코 수도회에 입회하고, 이듬해인 1245년 파리로 가게 된다. 원래 성인은 수도회에 입회한 그 해에 파리로 가게 돼 있었다. 1244년 5월경 도미니코 수도회 형제들과 파리로 출발하지만, 도중에 성인은 가족들에게 납치되어 그의 가문 소유인 로카세카(Roccasecca) 성에 약 1년간 감금된다.

당시 그의 가족들은 그가 도미니코 수도회 수도자가 되는 것을 크게 반대했다. 가족들은 성인이 몬테카시노 수도원장이 되는 탄탄대로의 길을 걷길 원했다. 그 길이 가문에도 중요했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도시 한복판에서 구걸하는 삶을 사는 탁발수도회의 길은 그야말로 최악이었다. 성인의 가족들은 성인의 미래가 고생길이 훤한 진흙탕 길이 아니라 레드카펫이 깔린 편한 길로 가길 원했다. 물론 성인의 미래는 그의 가문에도 영향을 미칠 터였다.

하지만 성인은 약 1년 뒤 로카세카 성에서 탈출한다. 도미니코 수도회의 형제로 살고자 하는 그의 마음은 누구도 막을 수 없었다. 가족들은 성인을 여러 가지로 회유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오히려 성인은 1년간 성에서 책을 읽으며 하느님 진리에 관한 탐구를 놓지 않았다. 결국 그 열정은 진리를 탐구하고 전하는 설교자의 삶으로 그를 이끌었다.



1245년 파리 생 자크 수도원에서 수도생활

1년간의 우여곡절 끝에 도착하게 된 파리. 성인은 당시 유럽의 대도시이자 그리스도교 학문과 문화의 중심지인 파리를 만나게 된다. 파리대학은 그리스도교 신학과 철학 연구에 있어 가장 중요한 곳이었다. 수많은 학자와 유능한 학생들이 이곳에 몰렸다. 성인이 머물렀던 나폴리도 파리에 비할 바가 못 됐다. 교수들과 학생들의 활발한 토론, 진리를 향해 나아가는 역동성 안에서 성인은 열정이 불타오르는 것을 느꼈을 것이다. 대도시 거리의 수많은 사람을 바라보며 성인은 진리를 전하고자 하는 사도적 소명을 다시금 되새겼을 것이다. ‘관상하라 그리고 관상한 것을 전하라.’(contemplare et contemplata aliis tradere) 성인의 유명한 저서 「신학대전」(Summa Theologiae)에도 등장하는 이 위대한 소명을 성인은 파리에서부터 본격적으로 불태웠음에 틀림없다.

1245년 파리에 도착한 성인은 그곳 도미니코 수도회의 생 자크 수도원에 머물며 형제들과 학문을 배우고 수도생활을 했다. 당시 생 자크 수도원은 파리에 있는 도미니코 수도회에 매우 중요한 공간이었으며, 많은 도미니칸 수도자들이 이곳에서 신학과 철학을 공부했다. 특히 이 시기 많은 학자가 도미니코 수도회에 입회해 생 자크 수도원에 머문다. 파리대학에서 명성이 자자한 몇몇 교수들도 도미니코 수도회 수도복을 입게 된다.

분명 진리에 대한 열정은 많은 신학도에게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하느님 진리를 공부와 기도로 관상하고, 그것을 많은 이에게 전하는 일은 모든 도미니칸들의 공통적 사명이다. 그 사명에 응답한 수많은 이들은 관상하고 전하는 하느님 진리가 바로 그들의 시대의 요청에 대한 해답임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1245년 스무 살 혹은 스물한 살에 토마스 아퀴나스는 파리대학에 입학해 공부를 시작한다. 이후 그가 그 대학 교수가 될 거라고 상상했던 이가 몇이나 됐을까. 1245~1248년 3년간 파리에 머물면서 성인은 대학과 수도원에서 하느님 진리 탐구와 깊은 관상에 매진한다. 또 중요한 만남이 성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파리에서 3년간의 학생 시절, 성인의 스승이자 파리대학의 신학 교수였던 대 알베르토 성인과의 첫 만남은 성인의 진리 탐구를 이끌어 줄 매우 훌륭한 인도자와의 만남이었다.



1248년 스승 알베르토와 독일 쾰른으로 떠나

신학과 철학은 물론 생물학·지리학 등 거의 모든 학문에 능통했던 알베르토 성인은 도미니코 수도회 수도자였으며 무엇보다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에 깊은 관심을 보인 학자였다. 토마스 아퀴나스가 나폴리에서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을 발견했다면, 알베르토 성인에게서는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을 심화시켰다고 할 수 있다. 그에게 알베르토 성인은 진리 탐구를 위한 많은 재료를 제공해준 스승이자 학문적 친구라 할 수 있다.

1248년 토마스 아퀴나스는 파리를 떠나 독일 쾰른으로 가게 된다. 그의 스승 알베르토 때문이었다. 그해 알베르토는 독일 쾰른 도미니코 수도원에 ‘수도회 학원’(Studium Generale)을 설립해 줄 것을 수도회 총장으로부터 요청받았다. 알베르토는 지체없이 쾰른으로 갈 채비를 하고 한 사람을 동행시키는데, 그가 바로 제자 토마스 아퀴나스였다. 일찍이 그의 학문적 재능을 알아본 알베르토는 이미 그가 위대한 학자가 되리라는 것을 예상했을 것이다.

그해 토마스 아퀴나스는 스승과 함께 쾰른에서 ‘수도회 학원’ 설립을 돕고, 몇 년 뒤 다시 파리로 돌아온다. 처음 파리에 왔을 때 그에게 주어진 것은 학생 신분이었지만, 이제 그에게 주어진 것은 파리대학 교수직과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크고 작은 힘겨움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