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황은 인간 품위의 살아있는 교과서

(가톨릭평화신문)
프란치스코 교황이 보여준 품위는 타고난 지적 능력이나 탁월한 추진력 때문이 아니다. 하느님 앞에서 끊임없이 자신을 낮추고 성찰하며 기도하는 삶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온 것이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재임 내내 상대의 존엄을 드높이며 그 힘을 함께 나누는 품위를 지키며 모두를 안아준 사도였다. OSV

“두뇌 회전도 빠르고, 누구보다 치열하게 산 사람이에요. 그런데 그런 분이 치매라뇨? 도무지 믿기지 않아요.”

한때 ‘전설’이라 불리던 인물이 알츠하이머 판정을 받자, 주변 사람들은 쉽게 믿지 못했다. 흔히 우리는 두뇌를 많이 쓰면 치매를 예방할 수 있다고 믿는다. 실제로 교육 수준이 높고 지적 활동이 활발한 사람에게 치매 발병률이 낮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그러나 이는 절대적 진리가 아니다. 오히려 성과 중심의 치열한 삶은 만성 스트레스를 유발해 뇌 건강을 해치고, 정신적 소진을 일으킬 수 있다. ‘무엇을 해내야만 한다’는 강박은 결국 삶의 질뿐 아니라 존재 자체를 위협할 수 있다.

오늘날 우리는 ‘목적 지향’의 세계에 살고 있다. ‘무엇을 했는가’로 평가받는 사회에서 ‘하는 것’이 곧 ‘사는 것’이 된다. 멈춤 없는 삶·쉼 없는 경쟁 속에서 관조의 여백은 사라지고, ‘어떻게 사는가’는 잊힌 질문이 되었다. 하지만 삶은 단지 ‘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는 것’이다.

존재하기 위해서는 멈춤이 필요하다. 이 멈춤은 단순한 휴식이 아니라 관조의 시간이며 세상을 하느님의 시선으로 바라보게 하는 관상의 문이다. 관조 없는 삶은 쉽게 자기소진으로 이어지고, 성과 속에서도 마음은 공허하고 정신은 피폐해진다. 결국 이러한 정신적 빈곤은 인격의 기반이 되는 인품, 곧 품위의 결핍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흔히 “품위 있게 살려면 돈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나이가 들수록 돈이 없으면 무시당하거나 비굴해질 우려가 있다. 하지만 품위란 ‘무엇을 소유했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존재하는가’에 달려 있다. 소유와 성과로만 자신을 증명하려는 사람에게 가난은 쉽게 비굴로, 부는 졸부로 변질된다. 재산은 많지만 그것을 다룰 내면의 힘이 허약한 사람은 속도에 매달려 균형을 잃고, 재산을 지키는 삶에 갇힐 수 있다.

품위는 성과나 교양·외적 화려함으로 채워지지 않는다. 그것은 자신과 타인, 그리고 하느님과 맺는 관계 속에서 조용히 드러나는 내면의 힘이다. 품위는 무엇을 이루느냐보다 어떻게 살아가느냐에서 비롯된다. 그것은 곧 존재의 깊이에서 우러나는 삶의 향기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가난했지만 부모님께서 품위가 무엇인지 가르쳐주셨다”고 회고한다. 그는 가난 속에서도 존엄을 잃지 않는 삶의 태도를 배웠다. 한 걸음 물러서도 주눅 들지 않는 힘, 부끄러움과 상처 속에서도 고개 숙여 용서를 구할 줄 아는 용기, 그것이 그의 품위였다.

품위는 인간 존엄을 지키는 힘이며, 자아 존중감에서 비롯되어 타인에 대한 존중으로 확장된다. 품위 있는 사람은 흔들림 없이 신념과 가치를 지킨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세상의 불의 앞에서 단호했다. 그것은 단지 외적인 강인함이 아니라 깊은 관상과 기도에서 흘러나온 내면의 힘이었다. 그는 하느님 사명을 단지 ‘행한 것’이 아니라 온전히 ‘살아냈다’. 그의 삶 전체가 하느님 뜻을 드러내는 행위였고, 동시에 그 뜻을 품은 존재 그 자체였다.

우리는 종종 품위를 지성이나 진취적인 리더십의 결과로 여긴다. 그러나 진정한 인품은 그보다 깊은 뿌리를 지닌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보여준 품위는 타고난 지적 능력이나 탁월한 추진력 때문이 아니다. 하느님 앞에서 끊임없이 자신을 낮추고 성찰하며 기도하는 삶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온 것이었다. 그의 존재는 관상의 열매였고, 그 관상은 품위라는 향기를 세상에 남겼다.

품위 있는 삶은 단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멈추고, 성찰하고, 다시 걷는 관조의 여정 속에서 평생에 걸쳐 다듬어지는 ‘존재의 향기’다. 인품은 곧 하느님의 시선을 품은 삶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우리에게 그 본을 보여주는, 인간 품위의 살아있는 교과서다.



<영성이 묻는 안부>

“저 사람은 참 품위 있다.” 이따금 그런 인상을 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품위’는 어디서 나오는 걸까요? 단순히 무언가를 잘해서도, 돈이나 능력이 많아서도 아닐 것입니다. 품위는 어쩌면 ‘존재의 방식’에 대한 깊은 성찰에서 비롯된 결과입니다. 생각과 말, 행동이 삶 전체에 자연스럽게 어우러질 때, 그 사람에게서 조용히 품위가 배어 나옵니다. 생각이 말이 되고, 말이 행동이 되며, 행동이 삶이 되는 과정에 품위는 깃듭니다.

어떻게 하면 품위 있게 살아갈 수 있을까요? 늘 무언가를 해야만 한다는 조급함에서 잠시 벗어나 멈춰 설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그 자리에 하느님 앞에 머무는 ‘관상’의 시간이 열릴 수 있습니다. 짧은 기도, 한 줄 묵상이라도 괜찮습니다. 그 순간 우리는 하느님의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며, 타인을 향한 존중의 눈을 갖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품위의 시작이 아닐까요? 성과나 외적 조건이 아니라 존재 그 자체로 살아가는 삶, 그 삶이야말로 진짜 품위를 만들어 줍니다. 하느님의 마음으로 사람을 사랑했던 프란치스코 교황처럼 우리도 그렇게 사랑하면서 품위 있는 길을 함께 걸어갈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